글틴10대 감성쟁이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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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공지]'쓰면서 뒹글' 운영 규정(2024.01.02)작성일 2023-10-2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217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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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난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이들과 함께 살아갈지 결정할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각자가 너무나도 다르고 유일하기에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가족의 형태가 모두에게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상가족은 성역할에 따른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가족 구성을 정상으로 여기는 이데올로기로부터 비롯된 개념이다.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부터 뭐라 콕집어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다. 정상?우리 사회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결혼의 형태인 이성 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부부와 혈연으로 맺어진 그들의 자식, 이들만을 가족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정형화 된 한 형태의 가족만을 정상이라고 칭하는 게 너무나도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이성애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이, 그것도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도록 압박 받는 것이 이상해서 견딜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은 그 존재만으로도 그 반대인 ‘비정상 가족’의 존재를 상정한다. 위에서 말한 정상가족의 정의에 부합하는 형태가 아닌 모든 가족들을 비정상의 범주로 밀어넣고. 사회가 제시한 가족의 형성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정상이 아니라고 해버린다니, 사회적 규범에 맞는 가정을 갖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찍어누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다 제쳐두고, 애초에 가족이라는 것에 '정상'이 필요한 개념이기는 한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가족이라는 건 도대체 언제부터 정상성이 적용될 수는 있는 개념이었는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리가 좀 굵어지고부터 내게 있어 가족이라는 개념은 꼭 함께 사는 사람의 성별이나 자식의 여부 같은 것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서로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고 지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들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 아닐까? 그게 혼인이라는 제도에 묶여 있어야 하는 관계인지, 굳이 상대방이 이성이어야 하는 건지, 반드시 로맨틱한 관계가 동반되어야 하는 건지... 내가 상상하는 바가 언어의 틀 안에 다 넣어지는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설명해보자면 저런 것이었다. 저게 가족이었고 저게 사랑이었으며 저게 내가 그리던 미래였다.몇 년 전부터 내가 추구하는 삶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청소년이니 당연한 거긴 하지만, 주기적으로, 또는 언제나 하고 있는 몇 가지 생각들 중 일부인데, 추상적인 주제이긴 했지만 영 결론이 나기 쉽지 않은 생각이다보니 의도치 않게 오랜 시간에 걸쳐 생각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장기화 되는 사유 끝에 난 내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상성에 부합하는 가족을 꾸리고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결론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 사실을 뭔가 엄청난 것처럼 포장하고 싶은 마음에 말이라도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하고 싶지만, 내게 사회적 정상성에 들어가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내가 언제나 사회적 다수에 들지 않을 수
작성일 2025-03-26 작성자 환상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46상세보기 -
수필 자화상: 풍화가 당신을 떠난 세계의 하루
"내가 너를 버렸다고 기억할 때, 그것은 사실이다. 내가 너를 버렸던 것 조차 아니라고 네가 슬프게 말할 때,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으로부터 버림 받은 것이라고 네가 생각할 때, 도대체 누가 지금 네 곁에 남아있는가?" - 『기다림 망각』 (모리스 블랑쇼, 1962)여름의 더위가 아물지 않은 작년 초가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을 다녀왔다. 한때는 미술학도였으나 이제는 붓을 꺾고 꽤 긴 시간 영화와 일탈을 벌여온 사람으로서,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고는 하는데,특히 그것이 학교에서 얼핏 들어본 이름이라거나, 관념적인 이론 내부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중에서도 베르나르 뷔페는, 근현대 국외작가를 향한 화단의 협소한 연구와 담론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그에 대한 논의가 중단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던 작가였다. 뷔페에 대한 대부분의 글들이 이번 전시회 시기를 내외로 갑작스레 여러 지면에 발표되었다는 것과, 같은 시기 열린 뭉크 전시회의 방문객에 비해 뷔페 전시회의 객들이 눈에 띄게 적었다는 사실이 그 반증일 것이다. 더군다나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 현판에는 대놓고 ‘피카소가 질투한’ 화가라거나 현대미술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작가라는 둥, 다소 보편적이고 신화적인 문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쉽사리 수긍하기 어려운 수식어들이었다. 그 수식들의 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선 뷔페의 작품들이 어떤 의미를 지닌 채, 어느 위치에 놓여있는지 말해보아야 할 것이다. 뷔페의 풍화요컨데 뷔페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작가의 심상을 가장 직관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때로는 날카롭고, 어쩔때는 정갈하며, 움푹 파여있는 감각적인 선들은 캔버스에 선을 긋고 있던 뷔페의 심상을 가늠케한다. 보다 명료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나열해서 비교해보는 편이 더욱 효과적일 듯 하다.(1) 청년기 1948년 (당시 뷔페 나이 20세) (왼쪽부터) , , (2) 중년기 1970년대 (당시 뷔페 나이 40세 중반) (왼쪽부터) , , (1)은 청소년 시절에서 청년 시절 그린 그림들이고, (2)의 경우는 그의 작품이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중장년기의 작품들이다. 그의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여의고 뷔페 혼자 살아가야 했던 불행했던 유년시절 그린 그림들, 가령 (1) 같은 작품들은 난잡한 선들이 캔버스를 뒤덮고 있고, 무미건조한 색감과 왜곡된 정물들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곳에 그어진 거친 선들은 마치 당시 고독과 연민에 빠져있던 뷔페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반면 그가 사회적으로 유명 화가로 떠올랐을 시기의 작품들 (2)은 대부분 초기에 비해 비교적 단조롭게 정리된 선들과 정물화같은 일반적인 색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작품들에 그어진 선들은 부동할 것처럼 단단하고 두꺼워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도록 한다. 그것은 초기에 비해 외려 산뜻하고 정갈한 감각을 불러일으켜서 이 시기
작성일 2025-03-25 작성자 화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04상세보기 -
수필 일기의 조각
-진짜 그냥 일기에요 제 다른 글처럼 재미없습니다 ;) 요거트를 다 먹었을 때 내 배는 요상한 죄책감으로 차 있었다. 억울했다, 이 감정을 느끼는 것이. 왜 나는 내게 어떤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굴까. 나는 오글거리는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도 노래 가사에서 나오는 ‘너’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내 인생이, 이 일어나는 일들이, 아무것도 그렇지가 않은데 왜 아플까? 가슴이. 나는 서둘러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귀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나의 목소리를 가려 주었다. 울고 싶었다.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 찜찜한 감정을 나의 울부짖음에 담아 저 하숫구멍으로 흘려보내고 싶었다. 눈이 무거워지고 코 끝이 찡했다. 눈물이 볼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울 수가 없었다. 알고있었다. 울지 못한다. 꽤 됐다. 언젠가 부터, 이 감정을 느꼈을 때 부터, 울기가 힘들었다. 나 혼자 맘 편히 울 수 있는 상황이여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 때 깨달았다. 우는 것은 일종의 표현이었다. 응어리를 풀어내는 순간이었다. 남들 앞에서는 눈물이 잘 났다. 제일 울기 싫은 순간에, 제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속내를 벌려 보여주듯이 눈물이 났다. 나를 위해선 울지 못하는 사람으로 커버렸다. 더 우울한 것은, 앞으로 나에게 내 그 속내를 보여줄 사람이 없을 거란 것이다. 이제 흐르지 못한 눈물은 내 폐 안에 맺혀가고 숨을 쉬기가 어렵다. 내 몸이 모두 이 짭짤한 물로 가득 차 버린다. - 오늘은 이상한 꿈들의 연속이었다. 거울을 본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거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마음이 고요했다. 그렇다고 느낀 순간 아파왔다. 구멍이 뚫려 내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정말로 누구도 아무도 무엇도 나에게 무언가 하지 않았다. 근데 왜? 왜? 왜? 왜? 왜? 하지만 행복해 지고픈 마음은 없다. 그렇게 되면 나를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언젠가부터 나의 감정들을 나의 정체성과 동일시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분명 그냥 서 있었는데. 별 생각없이. 근데 막 눈물이,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슬퍼서 눈물이 난 것 보단 눈물이 나서 슬펐다. 이유없이 목적이 있는 듯 울었다. 울었다 하기도 뭣했다. 이일은 전혀 나와 상의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얘 혼자서 한 거다. 엉엉 울지도 않았다. 그저 내 눈 밖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말리지도 않았을 뿐이다. 눈물로 채워지는 내 얼굴은 그 무게와 달리 매우 가볍게, 그 보다 더, 가벼워 비틀어진다. 비워진다. 눈물은 비운다. 감정과, 무게와. 그리고 올린다. 우울과, 다시 수위를.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소리치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건 익숙하면서도 익숙치 않다. 갈비뼈 안쪽이 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벽에 붙어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보자면 정말이지 내가 덩굴이 되어 그 위를 타고 오르는 것 같다. 눈을 감아 세상이 물로 변해버릴 때 까지. 통제가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불안이 끊길 때 그 누구도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기를 희망한다.
작성일 2025-03-25 작성자 아이졸려라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80상세보기 -
수필 11월 13일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다리 위에 올라서 있는 나에게.지금은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났어. 수능은 끝이 났고, 약을 줄였고, 대학에 붙었어.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당장 죽을 것 같아서 밖으로 뛰어나갔는데, 나가도 변하는 게 없어서 두려웠지. 계속 울면서 걸었잖아. 그러면서 생각했지. ‘제발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누가 됐든 나를 좀, 안아주세요.’ 그리고 깨달았지. ‘아, 사람들은 생각보다 주변에 관심이 없구나. 누군가 다리 난간 위에 올라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그래서 뛰어내릴까 싶었어. 너무 무서웠는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서. 분명 뭍에서 걷는데 점점 심해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어. 난간에 이어폰을 곱게 내려뒀어. 그리고 휴대폰과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도. 적어도 내가 누군지는 알아줬으면 해서. 내가 죽어 사라졌을 때, 엄마가 나를 찾아올 수 있도록.결국은 뛰어내리지 못했어. 대신 다리를 건너 계속 걸었어. 그러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엄마라도 나를, 살려줬으면 해서. 제발. 제발 나를 도와줬으면 해서. 전화를 받은 엄마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아빠는?” 엄마는 여전히 대학병원 응급실이라고 했지.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데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는 중이랬어. 그 말을 하는 엄마가 너무 힘들고, 지친 것 같아서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어. 또 말하지 못했지. 사실은 내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고.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었다고. 나를 제발, 도와달라고.그날은 이렇게 끝이 났어. 그냥... 그렇게 끝이었어. 대신 나는 지금 엄청 행복해. 고민 끝에 집을 떠나 타지에 있는 대학을 가보기로 했고, 그 모든 과정을 홀로 결정했어. 국가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도 안 내도 되고, 기숙사 신청도 성공했어! 알바도 해서 돈도 꽤 벌었어. 그 돈으로 친구들이랑 여행도 갔다? 그날 생각하던 친구와 함께, 가장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러 갔지. 새벽에 일어나 차를 타고 가서, 졸업식에 꽃다발을 건넸어. 그리고 친구네 집에서 술을 마시고, 북두칠성도 봤어. 놀이터 미끄럼틀이 재밌다고 소리를 지르며 웃었고, 여기저기 소품샵을 돌아다니며 과소비하다가 친구들에게 연행도 당했어. 맛있는 생과일 타르트도 사서 가족들에게 사다 줬고, 재미없던 화장품 쇼핑이 그렇게 재밌더라.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날 난간에서 뛰어내리지 않았기에 이런 행복을 누렸다는 거야. 죽음의 공포에서 도망쳐서 나는 행복을 얻었어.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있지? 다 개소리야 믿지 마.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으면 어때? 우리가 낙원 찾으려고 도망간 건 아니잖아. 낙원이 있으면 좋은 거고, 없으면 그냥 사는 거지. 네가 도망쳤다면 그건, 살기 위해서였을 테니까. 너를 믿고, 지금, 이 편지를 쓰는 나를 믿어. 우리는 도망칠 거야. 그리고 행복해질 거야.
작성일 2025-03-15 작성자 해파리06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11상세보기 -
수필 글과 글틴과 글의 세상 (미완)
나는 중학교 3학년의 마지막 달에 처음 글틴에 들어왔다. 그리고 글틴이라는 사이트가 어떤 건지도 모른 채, 내가 여태껏 혼자 끄적여왔던 소설을 하나 투고한 채로 잊어버렸다. 글틴을 다시 찾게 된 것은 그 다음 해 9월이다. 명예의 전당에 올라온 월장원 수상작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글을 쓰고 싶다, 월장원을 받고 싶다는 열망에 불타올랐다. 당시에는 내가 글을 정말 잘 쓴다는 생각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에 9월에 올린 시도 처음 올린 소설처럼 자신감에 차올라 게시했다. 그러나 월장원 선정이 어떤 식으로 되는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리며 간간히 써내는 글, 과거에 써왔던 글을 섞어 대충 시의 형태를 갖춘 문장을 생각날 때마다 올리기 시작했다. 단지 ’내 글을 누군가 본다‘라는 생각에 기대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비평은 꽤 고심을 들여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물론 지금 보면 많이 부끄러운 글이다)
작성일 2025-02-28 작성자 방백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67상세보기 -
수필 개구리의 가치관과 자유 의지
열심히 달려왔다.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달렸다. 아니, 걸었다. 아니, 멈췄다. 아니, 주저 앉았다. 솔직히, 울었다. 그리워 하지 말아야할 걸 그리워하고, 겪어보지 않았던 걸 추억했다. 미래에는 과거를 만들어 낸다. 현재에는 주변을 느끼고 과거에는 우울했다. 언제나 갇혀있었지만 열쇠는 나의 손에 있었다, 지금까지. 이 출처없는 우울과 슬픔을 옆에 까고 잔을 올렸다. 개구리도 와서 같이 해주었다. 그렇게 이 못난 친구들은 밤이 깊어 아침이 두드릴 때 까지 서로를 들이켰다. 우울은 너무나 쓰고 끝은 달았다. 슬픔은 맛이 가벼워 계속해서 들이켰다. 우울은 한 잔으로 족했다. 개구리가 별미 였다. 개구리는 부드러웠고 내 목구멍을 건드리지도 않고 점프해댔다. 개구리를 먹을수록 밖의 개구리와 안의 개구리는 계속 불어났고 결국 둘 다 꽉 차게 되었다 개구리로. 개구리의 끈끈한 식감이 부서지는 뼈소리가 잘근잘근 먹었다. 야만적인 짓이 더 필요했다. 이 모든것이 얼마나 ‘거짓적’인지에 대해 알려야 했다. 이것이 계몽이 아니라 야만인 것은 나는 다수가 아니니까. 나는 예술만을 믿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예술도 너들이 만든 것이라고 그러면 왜 정치를 싫어하는가 왜 진실을 회피하는가 그것들도 너희의 산물이라고. 이번엔 예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은 예술이라고 우리 모두가 보이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만들어낸 모든것이 예술이라고-개구리가 대신 말해주었다. 어느새 나는 개구리가 되어있었다. 어릴적 올챙이 때가 생각났다. 우리의 연못은 형제자매들로 가득했지만 어머니는 없었다. 감정은 없고 생존만이 있었다. 나는 연못에 있던 것만을 따랐다. 나는 살아남았다. 아무도 나에게 모든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배워야했다 살아야만 했다 아무것도를 위해서. 두려운게 없고 바라는게 없는데 살아야만 했다. 의문이 들었다 -나는 백지장 으로 태어나 그 뒤로 만난것들에게 쓰이면서 살았다 나라는 종이는 글씨들이 써지고 지워지고 자국이 남았다 나의 정체성은 언젠가부터 종이가 아니라 글이 되어갔지. 나는 누구에 의해 사는것이지 누굴 위해 사는것이지 -나의 폴짝거림인가 저 파리들인가 이 글씨들인가? 나는 연못에서 뛰쳐나와 달려갔다 완벽을 위해서.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의지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못에서 뛰쳐나와 달려갔다’가 쓰이고 있었다. 나는 얼른 차도로 뛰어들어 트럭 바퀴 아래fh 들어갔다. 짓누름도 잠시 나는 폭죽이 되어 도로위를 수놓았다 흰색 빨간색으로 장렬한 희망의 최고점을 찍고서.
작성일 2025-02-28 작성자 아이졸려라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76상세보기 -
수필 다르다는 착각
오늘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또 그 꿈을 꾸었다 무슨 꿈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느낌이 있다 그런 느낌 같은 꿈이었던 확신이 머리에 남아있다 사라진다 이제는 꿈이 꿈이 아니라 깨어있는 게 꿈 같다 매일 밤 같은 꿈 매일 낮 같은 생활 모두 다 같다 개성도 색도 없는 모든 게 일반화가 되어간다 같아지며 하나가 되어가고 같아지는 시점 사람들은 독특한 걸 찾는다 또 그걸 따라 하면 모두가 같아진다 같아지고 우리는 서로 닮아만 가며 새로운 걸 추구하려 한다 결국은 같은 길로 가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인지 결국엔 네가 내가 더는 하나가 아니더라도 서로 원하고 있더라도 다신 만나지 않을 거니까 다시 시작된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시 함께하는 안도감과 네 입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말들의 진동과 내 옆에 누군가 있으니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만족감뿐일 테니까 그 이면에 서로 해치는 말들과 편집적인 생각들과 나는 누군가를 만족하게 할 수 없다는 불안감들은 고려하지 않는 우리이기에 너와 내가 같다는 거다 우리는 인간이고 생각하고 서로 원하고 관계를 원하고 그리워하고 상처받고 미워하기에 우리는 같다는 거다 이러한 관계 속의 모순들이 우리의 정의이고 그 또한 모순이기에 우리는 거짓이라는 거다 그러기 나는 진실하고 싶다 오직 너에게만이라도 진실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미 거짓들로 둘러싸인 더는 진실한 나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지만- 보여줄 수 없기에 나는 나의 피부를 자를 것이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거꾸로 나와 내 내장이 겉이 되고 겉이 안이 되게 뒤집혀 진실한 나의 육체를 보여주고 싶다 -이것도 육체라고 날 사랑해줄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안다 너는 나를 좋아하지도 이해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의 이런 광대 짓을 봐주던 관객은 없었다는 것을 이 모든 게 나의 일인극이었기에 나는 또 홀로 춤을 춘다 알고 있는 모든 춤을 춘다 걷고 뛰고 점프하고 묵직하게 가볍게 나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 그러지 못한다 나는 달린다 모든 것을 지나치고 모든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오직 가쁜 나의 숨과 바람 외에는 느끼지 못한다 모든 감각은 이 행위에만 집중된다 원시로 돌아간다 오랫동안 달린다 이제는 내가 다리를 움직이는지 더는 멈추지 못하는 것인지 달리고 달려 바다로 뛰어든다 그 잠깐의 순간 중력이라는 짐을 내던지고 오직 이때만 느낄 수 있는 허공을 느낀다 엄마가 생각난다 그 자궁 속에서 헤엄칠 때 자유롭지만 구속됐을 때 본능만을 찾을 때 오늘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또 그 꿈을 꾸었다 무슨 꿈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느낌이 있다
작성일 2025-02-27 작성자 아이졸려라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33상세보기 -
수필 잊히는 것
모든 것을 지우니 내가 남았습니다. 얼마 나아가지 못한 생각들을 도려내니 하루가 끝나갑니다.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지 못한 수많은 단상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존재를 당신에게 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미뤄왔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완성한 시점으로부터 어언 반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글 쓰는 법을 잊고 살았습니다. 잊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잊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내게 고마운 존재입니다. 아주 잠깐 만난 나를 기억할 테니까요. 당신은 글을 통해 나를 봅니다. 그것을 나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스스로를 가장 많이 이해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나와 당신 사이를 글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글을 읽는 순간의 당신은 나를 기억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읽기 시작한 모든 것을 지우고 나를 바라볼 때, 허공에 남아있는 흐릿한 잔상과도 같은 글의 질감이 당신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많은 것을 얻었고, 그만큼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진심을 담았다고 생각한 문장들이 기만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뜯어보면 나의 소설은 공허합니다. 온전히 나를 담을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소설이 아닙니다. 흐름이 끊긴 글에는 심장이 없습니다. 나의 많은 소설들이 그렇게 죽어있습니다. 다만 어떤 문장은 아직도 나를 나아가게 합니다. 그렇게 나는 살아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우주에는 고요가 가득하겠지. 그러나 고요 안에서도 슬픔은 지속되겠지. 그땐 모두가 외톨이가 돼. 초록 호수에 몸을 담그면 온갖 걱정거리가 사라지는데, 나는 왜 이 무거운 짐을 평생 안고 갈 생각을 했을까. 마음 내키는 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색칠하고, 그건 작품이 되지 못하고. 너무 많은 생각은 순간을 흐릿하게, 세상을 단조롭게 만들어버리고. 한때 나는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추억에 사무쳤던 순간이 있어요. 그렇기에 나는 걱정이 많습니다. 계속해서 사라져가는 시간을 영원히 잡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글 못지않게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내가 찍은 사진에서 나는 없습니다. 문학에서도 렌즈의 방향을 돌릴 때가 되었습니다. 나의 소설에서 나를 특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의 소설에서 당신을 찾아내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나의 삶 어딘가에는 내가 있습니다. 2025.2.27
작성일 2025-02-27 작성자 아기호랑이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91상세보기 -
수필 수필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나는 꼭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하교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밖에는 종례 30분 전부터 비가 쏟아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우산을 챙겨서 돌아가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서 기계적으로 계획을 짜고 후회하다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는데 얼굴을 찡그리며 펑펑 울었다. 그리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강하게 솟구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었다. 소리지르는 매미가 가슴과 고막 속에 빽빽하고, 엄청나게 커다란 물고기를 꿀꺽 삼켜서 금방이라도 뱉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노력을 배신당했을 때, 이대로 모든 것을 놓고 회피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죽고 싶은 그 감정을 어디에도 쏟아낼 길이 없어서 나는 손 안의 핸드폰을 들어 글로써 자해했다. 그 행위는 너무 끔찍했지만 동시에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쓰나미처럼 토해 놓으면 그제서야 마음이 가라앉았다.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시립소년소녀합창단에 입단하기 위해서 노래를 연습했다. 어릴 때부터 노래부르는 걸 좋아해서 합창단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기뻤다. 하지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처음 합창단의 단실을 열었던 날을 회상하면, 마음은 금방 씁쓸해진다.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합창단 생활은 즐겁지 않았다. 지금의 나와 동갑이었던 임원 언니들은 우리를 엄하게 가르쳤다. 합창단 내에는 여러 규정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선후배간 말끝에 ‘다나까‘를 붙이는 것이었다. 그런 말투에 익숙하지 않아 실수로 해요체를 썼을 때는 혼이 날까 며칠동안 불안했다. 주먹 쥐고 엎드려 뻗치기, 혼낼 때면 ‘눈 깔아’라며 매섭게 명령했고, ‘단원증은 생명입니다’는 구호를 매번 외치게 했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 쓰레기통으로 단원증을 던지던 언니와 노래 연습이 안 되어 있다고 임원 언니 쪽으로 뾰족한 지휘봉을 던지던 지휘자 선생님, 단 한 번 보여준 안무를 제대로 외워오지 않자 다음 연습 때 엎드려 뻗친 임원 언니를 북 채로 때리던 안무자 선생님의 모습은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합창단과의 거리가 가까웠던 다른 단원들과는 다르게, 왕복 3시간이 훌쩍 넘던 거리도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나는 합창단에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버스에 타, 저녁 늦게 다시 버스로 돌아오는 생활도 힘들었다.시간이 지나 회장까지 맡을 수 있는 연차가 되고, 합창단 졸업이 끝났을 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지난 5년동안의 기억은 나를 여태껏보다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치가 떨릴 정도로 진절머리나고 공포스러웠던 공간, 시간. 나 자신을 껍데기로 만들지 않는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연습실. 내가 그럼에도 버텼던 것은 단 하나였다. 노래를 하고 싶었다.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좋았다. 시에서 주최하는 합창단답게 많게는 한 달에 세네 번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의 벅차오름이 소중해서 나는 내 동기들이 모두 졸업했음에도 남아 있었다. 합창단 생활
작성일 2025-02-26 작성자 방백 좋아요 1 댓글수 2 조회수 305상세보기 -
수필 a-1
다시 본 너는 아름다웠다. 모두가 그 의견에 공감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확신했다. 너는 분명히 아름다워졌다고, 나와 있었을 때 와는 달리 말이다. 나의 곁에 있던 건 아름다웠던 적이 없다. 방치된 첼로도 중고로 판 후에는 반짝반짝 윤이 났고, 나를 싫어하던 사람들은 나와 멀어진 후 더 빛났다. 너도 같다. 나와 멀어질수록 너무나 아름답고 나는 이 끈적끈적한 소유욕과 질투 속에서 갇혀 숨이 막힌다. 멀어질수록 아름답다는 말은 낭만적이지만 그것들이 더 이상 나와 관계의 끈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속뜻은 아프다. 네가 나와 있었을 때 나에게 변화는 없지만 네가 떠나면 나는 더 추악해진다. 발전은 없고 떨어지기만 한다. 뒤돌아서서 잠시 멈추고 마지막으로 너를 보려고 하면 사라져 있는 것이다. 저 멀리, 사라지는 석양처럼.
작성일 2025-02-26 작성자 아이졸려라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31상세보기 -
수필 .
개인적인 이유로 삭제합니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성일 2025-02-26 작성자 윤선후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88상세보기 -
수필 용서
욕망을 못 참고 그녀를 배신하니 지금 돌아보아도 눈물이 나왔다.그녀는 나를 백번 천번 사랑했고 믿어줬다.하지만 난 그것도 모르고 그녀에게 실망만 가져다주었다.손이 떨리고 숨이 거칠어지고 입술을 물고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숙여도 이 마음 어디 가지 못하고 콧물을 뚝뚝 흘렸다.생각하고 되뇌어 보아도 이미 지나간 일이고 앞으로의 상황도 무서웠다.마음을 안정시켜도 무거워져 갔다.생각을 정리해도 깜깜할 뿐이다.난 어떻게 해야 하는가?난 용서받을 수 있는가?지금 이 눈물조차….나 자신이 싫다. 이미 저질렀는데 무엇을 더 바라는가?
작성일 2025-02-16 작성자 리지소어 좋아요 1 댓글수 2 조회수 326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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