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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수필 조원희 - 한여름 밤의 결투
한여름 밤의 결투 조원희 무차별 폭격이다. 숨을 데도 없다. 따가움과 가려움도 견딜 수 없는 고문이다. 몸부림치다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물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적군이 휩쓸고 간 마을처럼 참혹하다. 물린 자리가 볼록하게 부풀어 올라 울음보를 터뜨릴 것만 같다. 황급히 파리채를 집어 들었다. 모기나 벌레 해충을 잡기 위해 모기약 대신 파리채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모기를 죽이는 약이 사람에게 좋을 리 없겠다는 건강 염려증이 불러온 결과다. 모기약을 쉭쉭 뿌려 버리면 간단할 것을 파리채로 모기를 잡으려고 앉아 있으면 탁상시계의 분침은 기척도 없이 시침을 밀어낸다. 모기는 게릴라 작전의 고수다. 불을 끄면 달려들어 물고, 불을 켜면 금세 내빼고 없다. 그중 간 큰 녀석은 불을 켰는데도 윙윙거리면서 내 얼굴을 공격하며 약을 올리기도 한다. 얼마나 잽싼지 종잡을 수가 없다. 발견하고 옳거니 하면서 파리채를 휘두르면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없다. 멍하니 파리채를 들고 시간만 축내고 앉아 있으면 다시 윙윙거린다. 사자가 먹이를 낚아채듯 목표물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파리채를 휘두른다. 하지만 녀석은 미꾸라지처럼 날렵하게 피하고는 유유히 달아난다. 불을 끄고 두 손을 얌전히 올려놓았다. 기척 없이 있다가 불을 끄면 다시 나타나 분명 내 피를 공수해 갈 것이다. 그때 다른 데는 제발 물지 말고 물려거든 손등을 물라는 뜻이다. 손이나 팔다리는 괜찮은데 얼굴, 특히 눈두덩에 물리면 여간 꼴불견이 아니다. 물파스를 바르지도 못하니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등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팍, 한 녀석이 걸렸다. 따가움을 견디지 못한 신체가 무조건 반사를 신속하게 가동한 결과다. 뜻밖에 올린 쾌거다. 녀석이 나를 우습게 알고 방심한 탓이기도 하다. 거미손 파리채도 못한 일을 엉성한 손바닥이 해냈다. 몸은 해체되어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피만 벌겋게 얼룩져 방바닥을 더럽혔다. 그동안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내려친 손바닥에 힘이 실렸다. 경허 대선사의 일화가 떠오른다. 경허 대선사는 헝겊 조각으로 기운 누더기 같은 가사(袈裟)를 오랫동안 입고 입었다. 가사 안에는 빈대와 벼룩이 늘 들끓었다. 하지만 경허 대선사는 도무지 빈대와 벼룩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사에서 역한 냄새까지 났다. 수발을 들던 만공 스님이 가사를 입으신 지 한 철이 다되어 간다며 갈아입기를 청했다. 경허 대선사는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옷을 벗었다.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빈대와 벼룩이 물어뜯고 피를 빨아 먹어 난장판이었다. 온몸이 불그죽죽 단풍든 것 같았다. 만공 스님이 가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경허 대선사는 “만공, 나라고 왜 가렵지 않겠는가. 빈대와 벼룩이 내 몸의 피를 마음대로 빨아 먹을 수 있도록 참고 있는 거라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참다운 수행자가 아니겠는가.” 그 말씀을 듣고부터 만공 스님은 경허 대선사의
작성일 2024-11-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3 조회수 556상세보기 -
수필 조원희 - 코를 지켜라
코를 지켜라 조원희 하얀 탑이다. 줄줄이 끌려 나온 화장지가 휴지의 임무를 마치고 하룻밤 사이에 탑을 만들었다. 뼈대 없는 연체동물보다 더 흐물흐물하고 낙엽보다 맥없는 것도 모이면 대단한 뭔가를 도모할 줄 안다. 하얀 휴지가 쌓이고 쌓이더니 제법 단단한 탑이 되었다. 신기하여 바라보며 미소 짓다가 아뜩해짐을 느낀다. 미소 지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본다. 좁은 이마가 시선에 잡히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러자 조물주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어쩌자고 외모에 민감한 여인에게 이토록 좁은 이마를 주시어 고민에 빠지게 하는지. 시선이 눈으로 내려간다. 눈은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중간 크기에 그렇다고 밉게 보이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나의 소견이지만. 입도 나무랄 일이 아니다. 보조개가 눈을 찡긋한다. 별로 예쁘지도 않고 왼쪽 뺨 하단에 아무렇게 자리 잡긴 했지만 없는 것보다 나으니 그나마 감사하다. 시선이 코에게로 옮겨진다. 진즉부터 자존심을 곤두세우고 있는 게 신경이 쓰인다. 제 몸으로 낳은 자식도 너무 애를 먹이면 정머리가 떨어지는 법이다. 제 주제도 모르고 내 얼굴의 정중앙에 앉아서 위세를 부린다. 없으면 추녀가 되고 병신이 된다. 그러니 없으면 절대 안 된다. 그렇다고 그렇게 밉게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는 대책 없이 너무 큰 탓에 학창 시절 놀림의 대상이었다.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이 난다고 했던가. 주제도 모르고 자존심만 세우던 코. 언제나 나를 주눅 들게 했던 코는 제 끼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주 사고를 쳤다. 조물주는 어쩌자고 내 코에게 그렇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는지. 가진 것도 없으면서 마음만 넉넉해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지도 모르고 세균, 바이러스 등 온갖 불량한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낭패를 당하여 인사불성하고 있으면 사고를 수습하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내 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뒷감당을 해야 했다. 언제부터인가 코에 알레르기 비염이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나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 당연히 모른다. 분명 코가 불러들인 것일 게다. 큰 코는 터 잡고 살기 좋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것을 약삭빠른 알레르기 비염이 모를 리 없다. 어떻게 구슬렸는지 코는 내 의견도 묻지 않고 쉽게 허락해 버렸다. 기가 찰 노릇이다. 자신도 괴롭겠지만 거느리고 사는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일은 자기가 저질러 놓고 나까지 힘들게 한다. 죽을 맛이다. 알레르기 비염은 점점 세력을 넓혀 갔다. 보통 악랄한 녀석이 아니다. 받은 은혜를 순식간에 배신으로 돌려 놓는다. 내 몸이 약해지면 용케 알고 수시로 대거 공격을 한다. 은혜를 듬뿍 준 코는 물론이고 나까지 초토화해 버린다. 그러면 나는 살기 위하여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현대 의학은 물론이고 한의학, 민간 의료법 등 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한다. 그러다 보니 코는 만신창이가 되어 갔고, 내 몸도 마음도 지쳐 갔다. 그러니 은혜는 아무에게나 베풀면 안 된다. 겉만 보고는 누가 배신할지 모
작성일 2024-11-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315상세보기 -
수필 조원희 - 어머니의 손
어머니의 손 조원희 승전보를 알리는 아군의 깃발 같다. 고통도 잊어버린 손가락 끝마다 허연 반창고가 붙었다. 물밀 듯이 밀려온 고난과 시련도 모성애의 힘으로 거뜬하게 물리친다. 적군의 성벽 위에 필사적으로 오르는 아군의 함성처럼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감동의 소용돌이. 곱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너무도 곱고 아름다운 손이다. 볼수록 민망하고 안쓰럽다. 크고 두툼한 손이 손가락마저 굵다. 손등과 손바닥 살결이 오랜 가뭄에 지친 논바닥처럼 갈라져 노송(老松)의 껍질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랑을 만든 손가락 끝마다 피가 새어 나온다.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허연 반창고로 갈라져 피가 새어 나오는 손가락 끝을 대충 땜질하고는 생활 전선을 종횡무진 누빈다. 마치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부러뜨리고 비장한 각오로 적진으로 달려가는 용감한 장수를 보는 듯하다. 갈퀴 같은 손이 장사(壯士)의 힘을 지녔다. 열 개의 손가락이 소나무 뿌리같이 꿈틀거린다. 치열하게 살아온 손임을 누구라도 알아채겠다. 분투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한 뼘의 손에 모였다. 감출 수도 없는 손. 도저히 여자의 손이라고 할 수 없는 투박하고 큼직한 손은 막일꾼 장정의 손보다 억세다. 희고 고와야 할 손은 아니더라도 부드럽게 가꾸어야 하는 게 여자의 손이건만 그런 손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어머니는 가난한 어부의 아내였다. 가난한 살림에 자식은 약을 올리듯 늘어났다. 아버지가 생선을 잡아 오면 어머니는 동네 아낙 서넛과 함께 생선을 머리에 이고 새벽이든 밤중이든 가리지 않고 팔러 나갔다. 생선을 빨리 팔아야 했기에 세상을 밝음과 어둠으로 나눌 겨를이 없었다. 버스와 시계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가난한 시골에는 버스도 시계를 가진 자도 드물었다. 어머니는 먼 길을 걸어 걸어서, 고을고을 집집마다 다니며 생선을 팔았다. 나는 언제나 버릇처럼 해가 중천을 넘어서면 마을 어귀로 어머니 마중을 나갔다. 그곳에서 어머니가 올 때까지 죽치고 기다렸다. 어둠살이 내려도 개의치 않았다. 여섯 살 터울 여동생을 등에 업고 생선을 보리쌀로 바꾸어 이고 올 어머니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여동생은 내 등에 오줌을 싸고도 따개비처럼 찰싹 붙어서 꼼짝을 안 했다. 뜨뜻한 오줌이 버젓이 등을 차지하면 등의 반기가 만만찮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중이 더 중요했기에 망부석이 되어 앙버티었다. 어머니가 보리쌀을 머리에 이고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기다림으로 지쳐 있던 얼굴이 제일 먼저 환호성을 질렀다. 내게 개선장군보다 더 당당하고 위대해 보였던 어머니. 어쩌면 나는 어머니보다 든든하게 내 배를 채워 줄 보리쌀을 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구수한 밥으로 부풀어진 배를 쓰다듬으면 하루의 임무를 완수한 것 같아 뿌듯했다. 가난은 모성애도 무용지물로 만든다. 그토록 자식을 지키려 애를 썼건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아홉 살 터울 큰오빠는 중학교를 끝으로 머구릿배1) 선원이 되었다. 아직은 투정 부릴 나이에 눈물을 훔치며 험난한 바다로 나가는 아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작성일 2024-11-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7 조회수 949상세보기 -
수필 이혜숙 - 바람이 사람을 세운다
바람이 사람을 세운다 이혜숙 며칠 만에 제주도에 내려왔다. 공항버스 종점에 내리자마자 바람이 양팔 벌려 맞이한다. 앞을 막고 포옹하자 하고, 한 걸음도 못 걷게 발목을 휘감는다. 격해도 너무 격한 환영 인사. 휘청대는 걸음으로 주차한 자동차에 도달해서 문을 여니, 이번엔 문짝을 뜯고 들어와 앉을 기세다. 양손으로 힘껏 끌어당겨 겨우 닫자 차창을 두드리며 바람이 큰소리로 외친다. “나 보고 싶었으면서 왜 보자마자 내빼려고 해?” 마음을 들킨 것 같지만 보고 싶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상대. 마주 서려 해도 뒷걸음질 치게 하는 존재. 나보다 기가 센 사람을 만나면 피하기부터 하는데, 제주의 바람이 그렇다. 그러니 숨 막히도록 달려드는 바람을 피해 차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바람을 피하자 비로소 바람이 느껴진다. ‘역시 제주 바람!’ 용인 집에 있는 동안 왠지 자꾸 가라앉는 기분이 그거였다. 바람이 불지 않아 움직이지 않는 나무며 풀이 시르죽어 보였던 것. 걸어 다니는 사람조차 축 처져 보였다. 나도 생기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무슨 일을 해도 의욕 없이 하는 기분이었다. 왜 그랬는지를 제주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어느새 제주의 바람이 익숙해졌음을. 그러면서도 강풍이 부는 날엔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안에서 보기만 했다. 나무를 사정없이 흔드는 바람, 바닥에 떨어진 비닐을 하늘 높이 올려 버리는 바람, 구름을 흩뜨리는 바람, 밤에 들으면 파도 소리로 착각하게 하는 바람···.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바람이었다. 두려우면서도 역동성에 감탄하곤 했다. 용인 집과 제주의 거처를 오가면서 며칠만 지나면 산소 부족이기라도 한 듯 답답하다가 제주에 도착한 순간 결이 다른 바람에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감당할 자신이 없는 상대에게 알게 모르게 끌리듯이···. 다음 날 종달리에 갔다. 수국 철이면 해안도로 양쪽에 파랑, 보라, 분홍의 수국이 수국수국 피는 곳이다. 제주의 여름이 종달리 수국에서 시작하기라도 하듯. 우도 가는 선착장 가까이에 있는 ‘오늘 종달’이 내가 자주 가는 카페다. “오늘만 살 작정으로 지은 상호 같네요.” 내가 농담을 건네자 주인 여자가 웃으면서 답했다. “오늘 하루 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 지나간 어제도 오지 않은 내일도 오늘 없이는 있을 수 없을 터. 주인의 강단 있는 성격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날 우리는 바람에 관해 이야기했다. “제주에서 오십 년 산 사람이 서울로 이사 가서 가장 먼저 느낀 게 풍경이 죽은 것 같더래요. 바람이 바람 같지 않다더니, 이제야 그 말을 이해하겠어요.” “섬 바람이 다르긴 다르죠. 사방이 바다라 막아 줄 무엇도 없으니. 센 날은 세게 부는 대로 약한 날은 약하게 부는 대로 바람을 따를 수밖에요.&rdqu
작성일 2024-11-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42상세보기 -
수필 이혜숙 - 튤립 축제, 그 후
튤립 축제, 그 후 이혜숙 봄은 해방군처럼 온다. 차갑고 무거운 겨울의 압박 아래 숨죽여 기다린 끝에 머지않아 그들이 당도할 거라는 은밀한 전갈이 바람결에 퍼지기 시작한다. 남쪽부터 입성했다더라, 하루에 몇 킬로미터씩 좁혀 올라온다더라, 여기저기서 승전고가 날아온다. 봄 여왕을 호위하는 꽃 부대의 군화 소리는 얼마나 당당하고 경쾌한가. 무혈입성! 동토에서 해방을 맞은 사람들은 밖으로 뛰어나와 팔 벌려 환영한다.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고 무엇이라도 해낼 것 같은 의욕이 넘친다. 꽃 부대의 행렬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은 먼저 마중 가기도 한다. 꽃구경이 그것이다. 도시의 가로수가 새순을 틔어 봄이 왔음을 알리지만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은 더 강한 꽃 세력에 끌려 길을 나선다. 꽃도 많이 모여 있어야 더 빛나고 눈길을 끌기 때문에 군락을 이룬 꽃들을 ‘꽃 세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열 평보다는 백 평에, 백 평보다는 천 평에, 아니 만 평에 세력을 부린다 한들 그 정복을 마다할까. 우리가 꽃을 보면 저절로 허리를 굽히게 되는 것도 자발적 항복이 아닐까. 내가 꽃 세력에 압도되어 무릎을 꿇은 것은 재작년 ‘튤립 축제’에서였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유채꽃을 놓치지 않으려고 4월 초에 제주도로 날아갔다. 가시리의 녹산로에 끝없이 이어진 유채꽃과 그 위에 넘실대는 벚꽃 구름을 보았고, 마침 ‘튤립 축제’를 한다는 곳이 있어서 찾아갔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니 축제 기간은 전날까지였단다. 수만 평의 정원에서 만난 튤립 군락, 과연 대단한 위세였다. 튤립은 봄 여왕으로 가장 어울리는 꽃이었다. 꽃송이 왕관에 잎사귀 검을 찬, 더구나 황금 주머니는 뿌리에 묻어 두었으니 부(富)까지 겸비한 막강한 군주일 터. 그 넓은 정원을 유유자적 걷자니 기분이 꽤 좋았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네덜란드 귀족이었다. 300여 년 전의 귀족들은 튤립 구근 하나에 집 한 채 값도 아끼지 않았다는데, 나는 수만 평을 채운 튤립에 둘리어 있으니, 집 한 채가 대수인가. 도시를 넘어 나라 하나를 통째 살 수도 있을 게다. 가늠할 수 없는 화폐를 세면서 거만한 걸음으로 걷고 있을 때였다. 아주머니 몇이 부지런히 튤립을 뽑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축제는 끝났지만 아직 한창인 꽃을 잡초 뽑듯 걷어 내는 것이었다. 한껏 들떠 있던 감상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아주머니, 멀쩡한 꽃을 왜 뽑아요?” “다음 주부터 다른 꽃 축제가 있어서 치워야 한답니다.” “어디다 보관하나요?” “웬걸, 다 버리는 거지.” “이 많은 걸 다요?” “그러게 말이요. 이게 다 돈지랄들이지.” 빨강, 노랑의 원색뿐 아니라 분홍, 보라, 흰색, 흑자색의 각가지 색 튤립들이 무참히 쓰러져 있는 현장을 보니 처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ldqu
작성일 2024-11-0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38상세보기 -
수필 이혜숙 - 나무에게 땅 사 준 여자
나무에게 땅 사 준 여자 이혜숙 마당을 제 집 삼아 사는 길고양이가 여덟 마리나 된다. 현관 앞에서 밥 줄 때만 기다리거나, 잔디밭을 축구장 삼아 뛰어노는 것밖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녀석들이다. 가끔 늘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면 한마디 한다. 신체 건강한 놈들이 놀고먹기만 하냐는 잔소리가 그것이다. 녀석들이 알아듣기라도 한 듯 하루 종일 안 보일 때가 있다. 녀석들이 무위도식하는 걸 보이지 않으려고 공사다망한 척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기껏 멀리 갔다는 것이 주차장 위란다. 그곳은 남편이 목공 작업을 하는 장소인데, 지붕이 있어서 비 맞을 일이 없으니 고양이들이 잔소리와 비아냥을 피해서 몇 걸음 옮긴 것에 불과했다. 남편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바로 튀어나온 말, “얼씨구. 지난봄에 데크 깔더니 고양이 좋은 일 했구려.” 길에서 훤히 보이는 곳이라 작업장밖엔 쓸 일이 없는 공간에 돈을 들인 게 못마땅해서 나온 소리였다. 남편은 오월 황금연휴 동안 방부목을 사들인다, 오일페인트를 칠한다 하면서 혼자 공사를 마쳤다. 공사를 밀어붙인 이유가 나중에 집 팔 때를 대비한 속셈임을 알기 때문에, 그가 일하는 내내 부루퉁했다. 나로선 집을 팔 생각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우리 손으로 지은 집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인지 남편은 알지 못한다. 20년 전, 오랜 전세 생활을 접고 아파트를 사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친구가 그 금액이면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게 어떠냐고 했다. 집 짓는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면서도 친구 말에 솔깃해서 주말에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로 나섰다. 때는 봄, 연두색 붓질이 지나간 어디라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백화점에서 아이쇼핑하는 티를 안 내려고 살 것도 아니면서 걸쳐 보는 진상 손님처럼 몇 군데 전원주택 단지를 돌아보며 땅값을 알아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연히 들른 동네에서 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꽃구름을 이고 있는 벚나무가 몇 그루 있는 땅을 보곤 그만 눈이 멀고 말았다. ‘이곳에 집을 지으면 주목도 옮겨 심겠네.’ 그 순간 아파트 16층 베란다에서 노랗게 말라 가고 있는 주목이 생각났다. 지난가을 엉겁결에 주워 온 나무였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서 용인으로 이사를 할 때 전세로 구한 집은 마당이 넓은 시골집이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열 그루도 넘었고, 단풍나무, 감나무, 주목도 있었다. 텃밭과 앞마당이 넓어서 그때도 한눈에 반해 이사를 했다. 서까래에 6·25 전쟁 때 총 맞은 자리가 남아 있는 구옥이었지만, 유치원생 딸과 돌 지난 아들이 흙을 밟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조건은 완벽했다. 그 집에서 산 것은 일 년 남짓. 몇 년 동안 지방 발령으로 이사를 했다가 다시 그 동네로 돌아와서 가까운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지나다 보니 그 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여기저기 나무들이 뽑혀 있는 것이 보였다. 땅을 분할해서 경매했다더니 마당을 정리하는가 싶었다. 그때 한구석에
작성일 2024-11-04 작성자 최고관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78상세보기 -
수필 이용옥 - 민기
민기 이용옥 청년이 다가왔다. "민기?" 그렇다는 말에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린다. 작은 키에 마른 체구. 거기에 검은 마스크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카페에 들어선 후, 차를 주문하자는 내 말에 민기는 프랑스제 생수통을 내민다. 당분이 든 차는 이와 대사질환에 안 좋고 유당은 소화기에 안 좋단다. 허브차는 괜찮지 않느냐는 권유조차 한사코 거절하며 청년은 생수 한 모금을 마신다. 빠른 말투에 떨어뜨린 시선, 이 청년이 내 기억 속 그 아이가 맞는 걸까. 민기는 눈이 반짝이는 아이였다. 아이는 그 초롱한 눈으로 무엇이든 오래 바라봤다. 운동장에 나가서도 뛰고 달리며 게임에 열중하기보다는 개미나 풀꽃을 바라봤고, 그런 날 그 애 그림일기에는 개미가 줄지어 기어가고, 풀꽃의 여린 잎이 연둣빛으로 하늘거렸다. “영식이 때문에 고생했다며?”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나는 오래 담아뒀던 말을 꺼냈다. “영식인 마음이 아픈 애였어. 그런데···” 민기는 처음으로 내 눈을 바라봤다. “약을 끊어서···선생님이 미안했어.” 눈길이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어쩌면 민기는 영식이의 존재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영식이는 유독 민기에게 시비를 걸고 괴롭혔다. 자리를 떨어뜨려 놓아도 녀석은 어느새 민기에게 접근해 말썽을 일으켰다. 그럴 때마다 화도 났으련만 민기는 잘 참았고, 아이엄마도 도리어 내 어려움을 위로하며 영식이를 걱정했다. 영식이의 부모를 상담하고 설득한 끝에 그들은 병원을 찾았고, 예상대로 과잉행동장애 판정을 받아 치료를 시작했다. 이후, 영식이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 학습적으로나 대인관계 면에서나 별문제가 없었다. 둘 사이도 원만해져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지만 떼어놔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문제는 3학년에 올라가 불거졌다. 치료약이 아이 성장에 좋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영식의 부모가 약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영식이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또다시 민기를 괴롭힌다는 소문이 전근한 학교에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지금껏 미안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선생님, 많이 늙으셨네요.” 생수병만 만지작거리던 민기가 생뚱맞은 말을 던진다. “늙었겠지, 그때가 벌써 14년 전인데···.”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받는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물으니 엄마 휴대폰에서 몰래 찾아냈다고 한다. 왜 ‘몰래’냐니까 나와 통화하는 걸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거란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려 깊게 배려하지 못한 담임을 원망했을 테니 그럴 수 있겠지. 그런데 “제가 임상병리사밖에 못 됐거든요. 그래서·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78상세보기 -
수필 이용옥 - 아들이 물었다
아들이 물었다 이용옥 아들이 물었다. "제가 악입니까?" 악이라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귀한 아들이 악이라니! 놀란 어미에게 아들은 강화길의 소설 을 읽었다면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주변 여인들에게 해악을 끼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로서 자신이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행한 적 없는 폭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물은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난 쉽게 '아니'라고 답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남자이자 내 귀한 아들은 대한민국의 여자이자 내 사랑스런 딸에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은 주인공인 ‘나’가 시댁 식구들 사이의 갈등 구도를 들여다보며 가정 권력의 역학관계를 파헤친 소설이다. 시할아버지 제사에 처음 참석한 ‘나’는 제사상에서 ‘토마토가 올라간 소고기 찜’이라는 낯선 음식을 발견한다. 시할아버지가 생전에 즐기던 음식이자 아들(나의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상에 올린다는 시어머니의 설명에 나는 의아해한다. 또한 나에게 배려 깊은 시어머니와 달리 시고모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에 의문을 갖는다. 제사상 위 낯선 음식의 실체와 원인 모를 시고모의 적의를 추적하던 나는 치매를 앓는 시할머니의 입을 통해 모든 의문을 푼다. "정원이 재수시키지 마라. 주제를 알아야지. 지가 무슨 약대를 간다고." 정원이는 시할머니의 외손녀이자 시고모의 딸이다. 치매를 앓는 상황에서도 시할머니는 외손녀가 친손자보다 더 나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토마토소고기 찜이 제사상에 올라가는 이유도, 아내에게 향하는 고모의 질투 원인도 알지 못하는 ‘나의 남편’은 그 집안 모든 여자들이 아는 유쾌하지 않은 진실들을 모르는 채 해맑은 얼굴로 갈등 없이 살아왔다. 남편은 그저 ‘모르는 권력’을 쥔 사람으로서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존재, 가정 내의 특권층이었던 것이다. 친정집은 1년에 여덟 번 기제사를 지냈다. 제사 때마다 여자들은 진종일 음식을 장만했고, 잿밥을 지어 상을 차렸다. 이상하게도 겨울 제사가 많았는데, 북풍한설 매서운 날 한밤중에 불 때서 밥 짓고 제상을 차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제사를 마치면 보통 새벽 한 시가 넘었고, 음복까지 하면 두세 시가 되는 것은 예사였다. 대청에서 제사를 마친 남자들은 따뜻한 방안으로 옮겨 앉아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자기들이 차린 제상에 절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여자들은 불기 걷혀가는 부엌에서 제꾼들 뒷수발을 들어야 했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남녀불평등의 기원이었다. 친정집의 불행은 큰오빠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서 시작되었다. 첫 손녀를 애지중지하던 아버지가 둘째까지 딸을 낳자 상심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태어난 손녀에겐 반갑지 않은 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급기야는 작은 오빠가 낳은 아들을 큰오빠 양자로 들여 조상을 모시겠다는 의사까지 표하셨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 딸만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08상세보기 -
수필 이용옥 -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시절 이용옥 마른 나뭇가지 사이를 서성이는 바람에 훈기가 묻어있다. 나는 얇은 외투에 벙거지 하나 쓰고 집을 나선다. 익숙한 곳은 익숙해서 반갑고 낯선 곳은 낯설어서 새로운 우리 동네 여행. 신발 끈만 묶고 나서서 찾아가는 고샅고샅이 정겹다. 양재천을 따라 내려간다. 작년에 누군가가 천변의 나무들을 다 베어버렸지만 그래도 갯버들 군락지에 새 가지 하나쯤 돋아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무작정 찾아가는 길이다. 먼발치서 보니 물가에 희부연 뭔가가 보인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다가갈수록 분명한 모습. 가지마다 조로롱 달려있는 회백색 털꼬리들, 버들강아지다. 말라버린 나무둥치 사이로 자라난 새 가지들이 제법 어우러져 탐스런 버들강아지를 피워내고 있다.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가지를 낸 여린 식물의 의지와 눈 위 바람에도 지지 않고 때를 맞춰 피어난 봉오리가 대견하다. 나는 중얼거리며 휴대폰 카메라로 버들강아지를 찍는다. “와, 버들강아지가 피었네요.” 돌아보니 젊은 아기 엄마가 다가온다. 2인용 유모차에 아기를 둘이나 태운 채. 나는 그들이 버들강아지를 잘 볼 수 있도록 얼른 자리를 비켜준다. 엄마의 탄성에 아이들도 한껏 호기심 어린 표정이다. “아가들도 나들이를 나왔구나!” 괜스레 웃음이 나오고 목소리는 높아진다. 언제부턴가 아기들만 보면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기엄마도 유모차를 세우고 휴대폰을 꺼내 든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사랑스럽다. 앞에 앉은 사내아이가 내려달라고 버둥거리자 엄마는 아이들을 내려놓는다. 사내아이는 발이 땅에 닿자마자 길을 따라 내달리고 누나는 버들강아지가 있는 천변 쪽으로 다가선다.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두 아이에 엄마는 순간 당황한다. 나는 작은 아이가 달려가는 쪽으로 따라가며 아기엄마에게 안심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만 두 돌이나 지났을까. 뒤뚱거리며 내달리는 녀석이 인형처럼 앙증맞다. 긴 겨울 동안 얼마나 자유롭게 달리고 싶었을까. 뒷걸음질하고 있을 겨울도 녀석을 보며 싱긋 웃음을 지을 것 같다. 아이가 발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본다. 웬 낯선 사람이 따라오나 하는 표정이다. 최대로 인자한 미소를 지었더니 나 한 번, 멀어진 제 엄마 한 번 바라보고는 가던 길로 다시 달린다. 따라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듯 신이 난 나는 녀석 뒤를 졸졸 따라간다. 아이를 저만큼 기르는 동안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래전, 짧은 육아 휴가를 마치고 복직한 후의 나날은 정말로 힘들었다. 밤낮이 바뀐 아기는 낮에 잠을 잤고 밤이면 놀아달라고 칭얼거렸다. 밤새 실랑하느라 비몽사몽인 나와 달리 날이 밝으면 잠에 드는 딸은 천연덕스럽도록 평온했다. 근 준비를 한 후,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우유를 먹인 다음 딸을 업고 현관문을 나서면 딸은 내 등에 ‘꼴깍’ 하고 우유를 토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아기 옷을 갈아입히고 속속들이 내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런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61상세보기 -
수필 유경미 - 그곳에 내가 있다
그곳에 내가 있다 유경미 빈 테이프에 영상을 새겨 넣는다. 테이프의 한 자리에 내가 있었다. 방송제를 보러 간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 만이다. 나와 지금의 신문방송학과 후배들은 안면이 없다. 있다고 한들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런 나에게 해마다 방송연구회 후배들은 전화한다. “선배님, 방송연구회 후배 ㅇㅇㅇ입니다. 이번에 방송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실 수 있으신지요.” 고맙다. 안면이 없는 선배들을, 거의 오지 않는 선배들을 매년 초대한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안다. 처음 전화는 첫째를 낳았을 때 받았다. 아이 엄마로서 후배들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후배들의 앞날에 더 멋진 선배가 되어 그들 앞에 나타나리라 다짐하며 “아쉽지만, 못 갈 것 같네요”라며 거절했다. 20대의 후배들을 보면 내 아이들 같다. 지금 나의 첫째는 스무 살이다. 나는 대학 동기들 가운데 거의 처음으로 결혼했다. 가족들이 놀란 만큼 대학 동기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방송제 초대 문자를 꼬박꼬박 보내 주는 이름 모를 후배들을 보며 기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가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방송제를 하는 즈음에는 늘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남편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한번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운을 띄웠다. 두 시간을 달리는 동안 흥분됐다. 차 안은 정적이 흘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가서 어떻게 보고 올지만 걱정했다. 나를 데리고 가는 남편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를 이해하는 남편에게 어떤 감사의 표현을 할까. 방송제를 하는 동안 남편은 친구와 저녁을 먹겠다고 했으니 편히 보고 나중에 만나잔다. 방송제가 열리는 건물 앞에서 나를 내려 주고 남편은 쿨하게 헤어졌다. 건물 안 로비에는 방송제 행사 팸플릿과 포스터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 무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송제를 준비하던 때가 생각난다. 방송제를 이끌어 가는 동아리의 이름은 방송연구회다. 학과 소모임별로 연말에 행사를 개최하는데 방송연구회의 가장 큰 행사가 방송제다. 2학기가 시작되면서 방송제를 위한 기획을 한다. 방송에는 라디오 구성, 드라마, 광고, 뮤직비디오 등으로 분야를 나누어 팀을 짠다. 장르마다 팀이 정해지면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콘티를 정하고, 촬영 일자를 공유한다. 촬영일을 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요즘이야 핸드폰으로 찍어도 잘 나오고 디지털화되어 있어 편집도 수월하겠지만 그땐 그렇지 못했다. 영화가 그렇듯 텔레비전 드라마나 광고가 그렇듯 음악이 그렇듯 디지털화되기 전에는 모두 테이프에 저장하여 편집하곤 했다. 비디오의 마지막 세대라고 해야 할까. 학교 기자재는 가격이 비싸 수시로 구매할 수 없었다. 아날로그 비디오카메라는 무겁고 불편했고, 편집을 여러 번 하면 할수록 화질은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최소한의 편집으로 완성된 모습을 만드는 게 관건이다. 방송제 날짜가 임박할 때 밤새우는 건 기본이었다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44상세보기 -
수필 유경미 - 진통제 두 알
진통제 두 알 유경미 약서랍을 연다. 약이 어디 있나, 마음이 급해진 상태로 두통약을 찾으려니 잘 보이지 않는다. 타이레놀 상자의 뜯어진 부분을 보니 거의 다 먹은 듯하다. 그래도 입구를 열고 약의 개수를 확인한다. 다행히 네 알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두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얼른 삼킨다. 피곤한 날이면 두통이 온다. 내 온몸의 긴장을 몸으로 느끼는 듯 뇌가 각성을 하는가. 빠듯한 계획을 소화하려는 날에는 점심 즈음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 저녁 내내 밥을 못 먹는 상태에 이른다. 몸 안에서도 바짝 선 긴장감을 유지하고자 점심에 먹은 음식을 소화하지 못해 체한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건 다반사다. 두통이 심해지면서는 집중력도 떨어지고, 20대 동안 내내 진통제는 나의 동반자였다. 두통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냥 당연히 머리가 아픈 거라며 다른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여자의 그때가 되면 일주일에 3일은 머리가 아프고 배도 아프고 그랬다. 체력은 늘 좋은 20대였지만 두통도 내게는 일상이었다. 게보린과 타이레놀은 어디든 갈 때마다 준비해야 하는 물품 중 하나였다. 머무르는 곳마다 두통의 신이라도 내려와 온 세상을 지배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두통이 오는 하루 동안은 만사에 문제가 생기고 모든 일이 하기 싫어졌다. 결혼하고도 두통은 계속되었다. 첫째를 낳고 엄청 두통이 심한 날이었다. 6개월째 되었을까. 모유 수유를 하는 중이었지만, 너무 머리 아파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참을 수 없었는가 보다. 병원에 가서 사진도 좀 찍어 보고 뇌 검사도 해 보자고 했다. 어디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소화가 되지 않아 밥을 먹지 않는 난 기운이 없이 두통약만 먹던 차였다. 그날은 유난히 심했나 보다. 첫째가 떨어지지 않아 검진할 때 내시경도 수면으로 하지 않던 나였다. CT와 MRI 검사까지 하려니 젖을 뗄 수밖에 없었다. 모유 수유를 끊고, 아이는 분유의 길로 들어섰다. 힘든 과정이었으나 결과는 별 이상 없음, 소화기관에 가스가 찬 것뿐이라나. 허탈할 뿐이다. 이후로는 아이 셋을 낳고 키우는 동안 가끔 두통약을 찾았다. 육아에 지친 날 한 번씩은 밥 대신 두통약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마음이 조금 편해진 걸까.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좀 마음에 맞았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지치다 못해 약 먹을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내가 이렇게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건 유전적인 문제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해 본다. 어린 시절 엄마와 밥을 먹는 날의 기억 속에 엄마는 많이 아팠다.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한 끼를 거르기도 했다. 늘 체한 것 같다며 굶는 엄마를 보면 왜 그럴까 싶기도 했다. 내 머릿속 엄마는 늘 속이 안 좋아 얼굴이 하얗게 보이기도 했고, 말할 기운도 없이 시부모님과 시할머니의 밥상을 차리곤 했다. 우리 엄마는 늘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다. 어느 날엔가 속이 좋지 않다며 마당으로 뛰쳐나가 토하는 모습을 보고, 이후로는 억지로 저녁을 같이 먹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15상세보기 -
수필 유경미 - 동그라미
동그라미 유경미 나는 동그라미다. 공 모양으로 모난 곳이 없다. 다른 사람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잘 굴러간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이라 생각한다. 무언가 궁금한 일이 있다고 해도 잘 묻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그 질문에 불쾌하지는 않을까, 나름 배려한다. 동그랗게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다. 그래서 동그라미를 좋아한다. 눈이 내렸다. 온도는 내려갔다. 입김이 나를 감쌌다.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깜깜했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더 이상 보기 힘들었다. 목이 아팠다. 내리는 눈이 나의 얼굴을 덮쳤다. 조그만 눈이 내 얼굴에 쏟아지니 눈을 뜨기 어려웠다. 얼굴이 시렸다. 이까짓 것. 눈을 떴다. 작은 하늘이 보였다. 검은색인가 자세히 살펴보다가 푸른빛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은 노려보고 있지 않은, 그냥 하늘이었다. 하늘이 바라보는 게 나는 거북했나 보다.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둠 속을 걸었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바닥은 눈이 하얗게 쌓여 갔다. 뽀득뽀득 소리가 좋았다. 걸음을 멈추어 뽀얀 눈 위에 섰다. 예전부터 하던 대로 발자국으로 꽃 모양을 찍었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꾹 밟았다. 발뒤꿈치를 한 방향으로 발가락 쪽 무늬를 연속으로 밟으면 하나의 꽃이 완성되었다. 해바라기 같았다. 나는 해바라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눈은 얼음이 되었다. 뽀독뽀독하던 보드라운 눈이 내려간 온도에 사각거렸다. 아침이 되자 빙판길이 되었다. 동그라미인 나는 빙판길에서 한없이 미끄러졌다. 접촉면이 적어서 끝없이 굴러갔다. 마찰 면이 적은 동그라미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내가 원하는 장소로 가려고 하면 훨씬 지나 원하지 않는 곳까지 닿았다. 쉽게 마음을 주어서일까. 모난 곳이 없어서 그런 걸까. 인생이 휘둘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얼음판을 살살 걸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스케이트를 배워 보는 건 어떤지 물었다. 어릴 때 친구들과 타 봤던 롤러스케이트에 많이 넘어져 다쳤다. 동네 친구가 태워 준 자전거를 타다 쓰러져 상처가 생겼다. 발이 닿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전거를 배운 기억이 있다. 미끄러지는 건 무서웠다. 실수를 하는 건 더 무서웠다. 피해를 주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 조용히 굴러가는 대로 사는 걸 택한 건 이 모든 것들의 이유일지 모르겠다. 나만의 원칙이 생겼다. 동그라미로 살아가는 동안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만들어졌다. 그렇다는 걸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냥 그대로 거기 있어 주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아무런 힘 없는 동그라미인 줄만 알았다. 남들 눈에 띄지 않는 누군가로 남기 위해 애를 썼다.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단체 사진에도 늘 귀퉁이에 숨어 있었다. 얼음판에서 밀려나지만 않게 조심히 틈에 끼어 있었다. 누군가는 내가 거기 있었는지 모르기도 했다. 걸리적거리지만 않아도 충분했다. 크기만 컸지 티가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07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