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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하혁진 - ‘모르는 여성’에서 ‘아는 여성’으로 : 강화길론
‘모르는 여성’에서 ‘아는 여성’으로 : 강화길론 하혁진 소설로 충분하다 2020년 여름, 강화길의 두 번째 소설집이 우리 곁에 도착했다. 화이트 호스(White Horse), 백마(白馬)를 타고. 자신이 공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소설 속 그녀들은 더 이상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때마침 동명의 노래인 Taylor Swift의 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I`m not princess, this ain`t fairy tale. (···…) Now it`s too late for you and your white horse to come around.” 강화길은 표제작인 「화이트 호스」에서 스위프트의 가사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나는 공주가 아니고, 이건 동화도 아니란다. 나는 너의 화이트 호스가 필요 없단다.” 이렇듯 변화를 경험한 그녀들은 왕자 대신 백마 위에 올라타 고삐를 쥐고 속도와 방향을 직접 ‘선택’한다. 요컨대 그녀들은 선택이라는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행위 주체라는 지위를 회복한다.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무엇인가를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그녀들은 동화 바깥의 현실을 ‘살아간다’. 두 번째 소설집에서 수록된 소설만큼이나 눈여겨볼 만한 것은 작가의 말이다. 강화길은 마지막 두 문장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다시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길게 쓰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는 소설로 충분하다.”(작가의 말 297쪽). 이 의미심장한 선언 뒤에 감춰진 진의는 무엇일까. 두 페이지 앞으로 가 보자. “당시 나는 이름을 걸고 일을 하는 것에, 그러니까 나를 향한 일부 비평에 대해 상당한 피로와 염증을 느꼈다. 신인 작가 입장에서 꽤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글도 있었고, 그간 내가 여성으로서 받아 온 어떤 평판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글도 있었다,”(작가의 말 293쪽). 이쯤 되면 ‘소설로 충분하다.’는 비장한 선언 뒤에는 모른 척 지나치기 어려운, 혹은 모른 채 지나쳐서는 안 되는, 숨겨진 내막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어떤 평판들이 그녀로 하여금 ‘작가’로서의 ‘나’와 ‘여성’으로서의 ‘나’가 겹치는 경험을 하게 한 것일까. 다른 인터뷰도 함께 살펴보자. 실제로 이 소설을 쓸 때 이런저런 비평에 시달릴 때라서 여러 가지 감정이 혼재된 상태였어요. 평가를 받는 일에 계속 시달리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비평적 언어와 내가 가진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쓴 소설을 보호하고 싶기도 했고요. 개인적인 경험에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지만 쓰는 과정에 깨달은 건, 저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어요. 여성 작가들이 여성 문제를
작성일 2024-11-05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01상세보기 -
비평 하혁진 - 포스트–메모리, 빚 없는 세대의 빛 : 박솔뫼, 최은영, 이미상의 소설을 중심으로
포스트–메모리, 빚 없는 세대의 빛 : 박솔뫼, 최은영, 이미상의 소설을 중심으로 하혁진 ‘포스트-메모리(post-memory)’와 트라우마라는 유산 “내 부모님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다”(21쪽)라는 진솔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엘리자베스 로즈너의 논픽션 『생존자 카페 : 트라우마의 유산, 그리고 기억의 미로』(서정아 옮김, 글항아리, 2021)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2세’가 일생 동안 겪고 느끼게 되는 기억과 트라우마의 면면이 페이지마다 빼곡하고 핍진하게 적혀 있다. 로즈너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뒤죽박죽”이라고 말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부모님의 전쟁 경험담을 처음으로 들은 시점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부모님이 겪은 사건들이 “내가 태어난 순간, 아니 어쩌면 태어나기도 전부터 내 몸 구석구석 파편처럼 박혀 있는 기분”이라고 술회하는 로즈너의 고백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2세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전성 트라우마’라는 “유별한 정서”(22쪽)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 볼 지점들을 남긴다. 그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평생 동안 슬픔, 불안, 분노를 비롯한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우리에게 속한 듯 속하지 않은 경험의 망령들이 주위를 맴돌고”(23쪽) 있다고 느끼는 그들은, 경험하지 않은 일을 잊지 못하는 모순을 평생에 걸쳐 체험하게 된다. 홀로코스트와 같이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세대의 트라우마가 다음 세대에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승되는 현상은 다양한 국가, 집단, 사건에 걸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로즈너 역시 “베트남 난민의 자손들에게서, 캄보디아 킬링필드 생존자의 자녀에게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의 수용소에서 격리되었거나 원자폭탄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일본인의 자손들에게서”(23쪽) 그러한 교차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현실 속에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건의 전말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고 했을 때, 후세대가 그 사건을 기억할 방법과 방식은 무엇이냐는 점이다. 요컨대 ‘포스트-메모리(Post-memory)’ 세대의 기억은 당사자 세대가 죽어가고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사라져 가는 “시간의 가장자리”(28쪽)에 놓여 있다. 그들은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나의 부모가 했거나 하지 않은 어떤 일”(42쪽)로 인해 기억의 의무를 지게 된다. ‘포스트-메모리(Post-memory)’는 미국의 비교문학자 마리안느 허쉬가 창시한 개념으로, 허쉬는 1990년대 초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의 만
작성일 2024-11-01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71상세보기 -
비평 김유림 - 문학으로 읽는 모빌리티 패러다임 2
문학으로 읽는 모빌리티 패러다임 2 김유림 김숨 「막차」 1. 거친 일상으로 질주 현대는 고-모빌리티1) 시대로 접어들었다. 전 지구를 하나의 네트워크 체계에 편입한 이동 매체와 지리적 활동 범위를 넓힌 교통수단의 역할로 인해 ‘이동’은 단순한 움직임을 넘어 현대인의 사회적 삶을 규정하는 하나의 인식 틀로 자리 잡게 되었다.2) 김숨 작가는 70여 편의 작품을 통해 서민들의 곤궁한 삶을 재현해 왔다. 특히 이동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서사는 흔들리는 약자들의 실존 삶을 기계적 상상력으로 재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교통수단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인간과 기계는 한 몸이나 다름없다. 인간과 사물의 동일체 의식은 예술적 감응을 넘어 AI와 공존 시대, 새로운 사유 확장의 논거가 될 것이다. 「막차」3)는 가족의 일상사를 모티브로 모빌리티 수행 과정을 재현한 작품이다. 소설은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죽음을 모티브로 천변만화 같지만, 알고 보면 제자리를 돌고 도는 인생 여정을 다룬다. 서사는 부부가 고속버스에 탑승하면서 시작된다. 소설 장르는 사회 계층의 구체적 현실로 부각 되는 인간관계의 불합리한 조건과 그 이면에 내재한 문제들을 형상화하는 장르다.4) 「막차」는 개인 가족사를 다루고 있으나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포착하고 있다. 화자 순옥 부부는 아들로부터 며느리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순옥은 기우뚱 가라앉는 배에서 뛰어내리듯 외출을 서둘렀고 남편은 경황없는 와중에도 바지를 다림질하고 손수건까지 다려 외투 주머니에 챙겨 넣고서 집을 나선다. 순옥은 남편의 행위가 눈에 거슬렸으나 굳이 탓하지는 않는다.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결혼까지 했을 정도의 시간을 함께 사는 동안 익숙하게 겪어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코드는 뺏대요? 코드를 빼두는 거랑 꽂아두는 거랑 전기세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밥솥 코드는 뺐던가. 하루 이틀 비울 것도 아니고, 집을 나서기 전에 두루 둘러보지 않은 게 그녀는 뒤늦게 후회되었다. (13쪽) “어제오늘 손님이 달랑 한 명뿐이었다고요. 그것도 파마 손님이 아니라 염색 손님요. 그깟 염색을 해주고 얼마나 받는다고. 자반 한 손 사고, 달래 한 묶음 사니까 그 돈이 다 날아갑디다.” (「막차」 본문, 이하 쪽수만 표기, 19쪽) 순옥 가족이 처한 현실은 전기 요금이라도 아껴야 할 만큼 곤궁하다. 남편은 자신의 입성만 챙기는 무능한 캐릭터로 아내 순옥에게 생계를 의지하여 삶을 지탱해 왔다. 그동안 남성은 합리적이고 강인하며 가족을 보호하고 가족이 처해있는 일련의 문제들을 결정하는 주체로 여겨져 왔다. 반면 여성은 감정적이고 연약하며 보호가 필요한 순종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5) 「막차」의 화자 순옥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며 남편은 무위도식한다. 이러한 구조는 전통적인 성 역할이 전도되는 양상을 보여주며 가부장제의 변화를 아
작성일 2024-09-05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34상세보기 -
비평 김유림 - 문학으로 읽는 모빌리티 패러다임 1
문학으로 읽는 모빌리티 패러다임 1 김유림 김숨 「룸미러」 1. 길 위에 표류하는 인간 모빌리티는 시대를 읽는 키워드가 되었으나 문학과 연결고리는 느슨하다. 국내외적으로 『서유견문』, 『열하일기』 , 『오디세이아』, 『리어왕』, 『돈키호테』등 이동을 모티브로 천착한 세기의 걸작들은 넘쳐난다. 반면 모빌리티 인식을 기반으로 문학 작품을 사유한 사례는 미미한 편이다. 현대는 이동성이 범람하는 사회다. 다양한 이동 매체와 첨단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를 제외한 인간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시대의 거울인 문학 분야에서도 이동 매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모빌리티 수행 과정에 천착한 문학 작품 해석은 시대의 재해석이며 사회를 관통하는 인식의 재발견이 될 것이다. 더하여 문학과 다소 거리감이 있는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의 예술적 가치 추구는 문학 분야를 넘어 예술계 전반에 시너지 효과를 추동하리라는 예감이 든다. 김숨 소설 「룸미러」1)는 ‘길 위의 장르’2)로 교통 시스템이 사건의 주요 무대다. 도로에 범람하는 교통수단은 사회의 얼굴이다. 수백만 원 단위부터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자가용, 생계 수단인 물류 수송용 트럭, 관광버스, 배달 오토바이 등은 물신주의, 사회 계급을 표상하는 하나의 기호다. 소설은 집을 떠나 목적지를 향하여 이동 중에 서사가 전개되어 이동 중에 결말에 이른다. 이때 이동 수단은 가족이 임시 체류하는 거소가 된다. 즉 집이 정주에 근거한 안정된 공간이라면 교통수단은 집을 떠나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잠시 머무는 장소로 불안정한 공간이라 하겠다. 이동 중에 체류지는 사이 공간3)이다 사이 공간의 불안정성은 경제적 약자의 현실 삶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생계 위기로 대별 된다. 「룸미러」의 사건은 어린 사내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부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화자는 아내다. 소설의 배경 공간은 자가용으로 가족의 이동을 모티브로 한다. 가족은 남편의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에 가는 길이다. 외자식인 남편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어릴 적부터 가장 역할을 해왔고 친척 대소사까지 빠짐없이 챙긴다. 아내가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는 오롯이 남편이 책임지고 있다. 남편은 두 달 전에 직장을 옮겼다. 가장의 잦은 이직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원인이다. 고용 불안은 가장의 심리 불안으로 이어진다. 남편의 불안 심리는 아이들이 잠들었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행위로 드러난다. 야근 중에도 집에 수시로 전화하여 아이들이 잠들었는지 확인하고 잠들지 않았다고 말하면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는다. 퇴근해 오면 잠든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티브이 볼륨조차도 낮춘다. 가장의 강박 행위는 가족이 차를 타고 이동 중에도 계속된다. 남편은 차선을 바꾸면서도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을 흘끔 살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깨어나기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해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의 두 눈동자가 흘끔 룸미러를
작성일 2024-09-05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1 조회수 632상세보기 -
비평 선우은실 - x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y화하면서 분열
x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y화하면서 분열 -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이미상 「티나지 않는 밤」을 중심으로 선우은실 intro. 분열된 언어와 여성의 욕망 여성은 어떻게 욕망하는가. 여성의 분절적 언어성이 곧 사회 안에서의 여성인 ‘나’를 인식하고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때, 이는 여성 젠더가 사회에서 어떤 식의 요구를 욕망으로 전유해야만 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분열이 발생하는지를 파악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이에 여성이 욕망을 표출하는 것과 유비적 상관성을 지니는 듯 보이는 여성적 발화의 한 형태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보고자 한다. 아마도 이 산문집을 질투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행이에요. 얼마 전에 산문을 발표했는데 교정지에 편집자가 디자이너에게 보내는 메모가 함께 스캔되어 있었다. ‘글이 너무 파편적이라 문단을 나눠야 할 것 같아요.’ 확인사살 감사합니다. 파편이 내 삶의 숙명 같아요. 엄마로 시인으로 작가로 가사노동자로 선생으로 살면서 매일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게 숙명이라면 파편의 대마왕이 되고 말 거야. 모두가 침묵할 때 함께 침묵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그러면 내가 살 것 같아요. (···) 뭔 소리 하는 거야? 하고 느끼셨다면 그 생각을 의도한 게 맞습니다만. 자세한 얘기는 하기 싫어서요. 공감받는 건 정말 별로니까. 너도 사실은 네가 누군지 알기 싫잖아. 나도 내가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고 함부로 정의당하기도 싫어.1) 백은선은 에세이에서 “파편적”이라 인식되곤 하는 자신의 글쓰기가 곧 자신의 정체성의 분화와 관련되어 있음을 자필한 바 있다. 이는 기실 하나의 글에서조차도 다변하는 그녀의 쓰기의 ‘형식’에서 엿보이는 특징이거니와―어떤 문장의 톤이 거칠어지거나 격정적으로 치달았다가 금세 시무룩해지기도 하고, 다듬어진 것처럼 보였다가도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산문이었다가 시가 되었다가 사진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그녀의 시에서도 익히 잘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파편성’은 단순히 에세이와 시의 발화가 뒤섞여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여러 방식으로 분절되고 파편화되는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음에 대한 인지가 ‘분열적 언어’로 표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교컨대 이는 통일되고 일관된 ‘정제된 언어’로서 자기를 규정하는 일이 얼마간 환상에 불과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상성이 합리성을 자처하는 ‘남성적’ 언어가 (그 자신과 타인까지도) 지시하는 무결성의 환상에 기대어 있음을 보여 준다. 여성이 여성으로서 자기를 지시하는 언어가 파편적이고 분열적인 방식으로 직조되어 자신을 구성하고 있음을 인지함으로써 곧 ‘분열적 언어’ 그 자체로
작성일 2024-08-07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44상세보기 -
비평 선우은실 - 내가,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말했다 -최근 소설 속 삼인칭 서술 양상과 ‘당사자성’의 확대 가능성을 논하며
내가,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말했다 -최근 소설 속 삼인칭 서술 양상과 ‘당사자성’의 확대 가능성을 논하며 선우은실 intro. 시점(point of view)의 문제 ‘내가 그렇게 말했다’와 ‘그가 그렇게 말했다’는 어떻게 다른가. 하나는 일인칭 서술, 하나는 삼인칭 서술이다. 두 문장이 하나의 상황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할 때, 이 두 문장이 지니는 차이는 단지 그뿐일까? 전하려는 상황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으니, 주어가 달라졌을 뿐일까? 나는 이 글에서 두 문장에 의해 이야기된 것이 ‘다른 것’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두 문장에서 갈음된 것은 ‘주어’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는 단순히 ‘누구’가 아니라 ‘시점(point of view)‘의 차이에 따른 태도의 변화를 내포한다. 해당 발언을 하는 발화자의 관점에 의해 사건이 판단되고 해석되어 전달된다는 사실은 인물의 교체가 아니라, ‘시점’의 측면에서 볼 때 인물 간 가치관의 차이 이상을 함의한다. 특정 문제의식을 어떠한 캐릭터의 해석을 경유해 말할 것인가(‘나는~’) 혹은 보다 객관적 진술이 가능한 서술자를 설정하여 어떤 전망 내지는 태도를 강조할 것인가(‘그는~’)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물과 서술자의 말과 태도가 곧 작가의 그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말하게끔 하는 서술자를 통해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는가 하는 점은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현실을 되비췄을 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때 ‘필요한 것’이란 ‘결핍된 것’과 교집합을 이룬다. 이때 ‘(결핍된) 필요한 것’이란 그저 비어 있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어 있으나 다른 마땅한 것으로 채워져야 할 비어 있음이다. 그것은 시간이 걸리거나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채워질(해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식의 개선이나 해결이 필요하기는 하며, 그렇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 있다는 데 방점이 찍힌다. 즉 현실의 결핍은 완전하게 해소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결핍된 것을 이러한 식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시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약 현실에서 처리될 수 없는 어떤 공백이 서사의 ‘시점’을 통해 제안될 수 있다면, 서사가 지닌 현실에 대한 허구성 내지는 환상성은 바로 이 공백에 대한 하나의 안(案)을 제안하고 보여 주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최근 서사에 대한 여러 비평적 제안들, 가령 페미니즘 서사나 퀴어 서사에 대한 독해 또는 돌봄의 정치, 포스트 휴머니즘적
작성일 2024-08-06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62상세보기 -
비평 박다솜 - ‘다정함’ 담론과 여성 가장의 이중 책무
‘다정함’ 담론과 여성 가장의 이중 책무 박다솜 1. please, be kind. 다니엘 콴·다니엘 쉐이너트의 영화 (이하 )는 미국에 정착한 중국인 이민자 가정의 애환을 다룬다. 주인공 에블린은 운영하는 세탁소의 세무 조사를 준비하면서 아버지의 식사를 챙기고, 신년 파티를 준비하는 동시에 딸 조이의 동성 연인을 (손녀의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분명한) 아버지에게 소개하며, 42번 세탁물을 찾아다 주고, 남편 웨이먼드가 천장에 칠한 페인트 색을 확인하면서, 세탁소 손님의 성희롱도 감당해낸다. 다중우주를 소재로 하는 이 영화가 오색찬란한 평행 우주들을 누비며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 만큼이나 영화 초반부에서 에블린이 수행하는 다중-미션들 역시 우리를 정신없게 한다. 말하자면 에블린은 국세청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우주의 웨이먼드를 만나 다중 우주여행으로 인도되기 전부터 이미 충분히 다중적인 삶의 책무들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웨이먼드가 자신의 착함이나 다정함은 바보 같은 것이 아니라 세상과 싸우는 방식, 즉 생존 전략이라고 말하며 에블린에게 ‘다정하게 대해줘’라고 요구하는 장면은 얼마간 폭력적이다. 웨이먼드가 그 자신의 말대로 다정함을 생존 전략 삼아 삶을 분투하는 동안 웨이먼드의 생존 방식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않은 것들-세탁물 찾아다 주기, 쿠키로 세무관의 일시적 환심을 사는 것 말고 실제로 세무 문제를 해결하기, 완고한 아버지에게 딸의 동성 연인을 소개하기 등-을 직면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은 에블린이기 때문이다. 웨이먼드의 ‘다정함’ 이론은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2022)와 직접적으로 공명하는데, 책은 친화력이나 타인에 대한 감수성,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종족 유지에 얼마나 유리하고 유용한 것이었는지 분석하며 ‘다정함의 힘’을 거듭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우리 인간들의 친화력에 존재하는 어두운 면을 간과하지 않는다. 우리는 위협적인 상황에 놓이면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1)이라는 전언은 웨이먼드의 관용이 에블린의 무자비함으로 구축한 보호막 속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따라서 에블린에게 부족한 것은 다정함 자체가 아니라 다정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웨이먼드가 세무관에게 줄 쿠키를 굽는 대신 세법을 공부해서 세무 문제를 해결했다면, 에블린은 딸의 동성 연인을 아버지에게 소개할 적절한 말을 조금 더 고심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웨이먼드가 세탁물에 장난스런 눈을 붙여두는 대신 세탁소의 일을 전담하고 세탁물을 직접 찾아다가 고객에게 전해주었다면, 에블린은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고 세무 문제를 처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사태의 핵심은 에블
작성일 2024-07-30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10상세보기 -
비평 박다솜 - 막다른 골목, 미래를 소설하는 두 가지 방식
막다른 골목, 미래를 소설하는 두 가지 방식 박다솜 1. 막다른 골목에서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시대다. 만 19세에서 23세의 청년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50.4%가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다는 내용의 한 연구1)는 이 문장이 비유나 과장일 수 없음을 묵직하게 일깨운다. 물론 결혼제도와 출산 밖에서도 삶은 얼마든지 충만해질 수 있지만, 연애·결혼·출산·내집마련·취업창업 등 총 10가지의 항목에 따라 청년들을 ‘미래계획형’, ‘결혼출산포기형’, ‘N포형’으로 분류한 앞의 연구에서 우울·불안은 ‘N포형’이 가장 높고 행복감은 ‘미래계획형’, ‘결혼출산포기형’, ‘N포형’ 순으로 높다고 분석한 것을 보면, 결혼과 출산을 포함해 여러 항목에서 미래를 꿈꿀 수 없을수록 덜 행복하고 더 우울·불안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춰 최근의 문학 작품들 역시 암울한 미래인식을 속속 보고하고 있다. 변혜지의 첫 시집 제목이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문학과지성사, 2023)인 것이나, 특유의 유머로 저성장 시대의 우울을 부조해내는 고선경의 『샤워젤과 소다수』(문학동네, 2023), 코로나와 생태 위기 같은 현재의 문제에서 시작해 미래를 가늠해보는 강혜빈의 『미래는 허밍을 한다』(문학과지성사, 2023) 등 최근의 시집들에서는 현재를 막다른 골목으로 인식하고 꿈꿀 수 없는 미래를 애써 더듬어보려는 시도들이 거듭 발견된다. 비관적인 현재와 막막한 미래를 토로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물론 소설로도 형상화되고 있는데,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2)에 대한 세밀한 독서는 지금-여기의 우리가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고 생각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밝혀줄 것만 같다. 2. 부패한 공동체와 ‘알잘딱깔센’의 폭력 –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가 불분명한 글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눈치가 빨라서 외항사 승무원들이 한국행 노선을 선호한다고 한다. 비행기 안에서 배식이 시작되면 일제히 테이블을 펴두고, 앞뒤로 들려오는 대화를 엿들어 내가 먹을 메뉴도 미리 정해두고, 저 앞쪽에서 승무원들이 식사를 치우기 시작하면 자신의 식사도 서둘러 마무리하고, 음료를 주문할 때도 승무원이 덜 귀찮도록 일행들과 함께 한 번에 요청한다는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우리는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행동한다. 바쁜 식당에서는 메뉴를 통일하고 사람이 많은 점심시간에는 눈치껏 얼른 먹고 일어난다. 그게 서로서로 효율적이니까. 모든 일은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빨리빨리 착착 진행되어야 하니까. 한국인의 급한 성미를 드러내는 표현 ‘빨
작성일 2024-07-30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46상세보기 -
비평 고광식 - 원초적 공간을 걷는 감각적 주체-안희연의 시
원초적 공간을 걷는 감각적 주체 –안희연의 시* 고광식 1. 감각이 붙잡는 것들 2020년대의 젊은 시인들은 시적 화자를 통해 세계와의 갈등을 더욱더 강하게 일으키고 있다. 세상과의 불화는 커졌고, 파편화의 양상은 다양해졌다. 해체적 사유는 낯선 길을 만들며 끊임없이 지속된다. 이처럼 새로운 문법의 시들은 시의 영역을 넓히는 데 열중이다. 이는 레비나스가 지적한 것처럼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에 대한 권태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들 또한 이러한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전통적 서정성에 대한 권태는 탈서정으로 가는 기제를 만든다. 새로운 서정이란 새로운 환경과 특별한 형식을 요구한다. 낯선 발화 지점을 찾아가려면 낯선 접점이 필요하다. 시인들은 전통적 서정시를 연소시켜 버리며 대체적 개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발화의 순간은 이제 새로운 문법으로 수렴된다. 안희연에게 시 쓰기란 원초적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시인은 자신이 확보한 공간에서 낯선 주체가 되어 감각적 발화자로 등장한다. 자크 랑시에르는 ‘감성의 분할’에서 “어떤 공통적인 것의 존재 그리고 그 안에 각각의 몫들과 자리들을 규정하는 경계 설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감각적 확실성의 체계를 나는 감성의 분할이라고 부른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이러한 확실성의 체계를 인식한 시인들은 세계와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시인이 바라보는 주체는 파편화되어 공간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안희연은 공통적인 것으로부터 분할된 자기 몫을 원초적 공간에서 찾는다. 오로지 감각적 주체가 되는 것만이 사물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길이라 믿는다. 따라서 문학에 대한 욕구로 초현실적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배타적 몫을 챙기는 데 열중한다. 안희연에게 시 쓰기는 현상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일이다. 시인은 현실에서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을 원초적 열정으로 재현한다. 버려진 페이지들을 주워 책을 만들었다 거기 한 사람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한 페이지도 포기할 수 없어서 밤마다 책장을 펼쳐 버려진 행성으로 갔다 나에게 두 개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처음엔 몰래 훔쳐보기만 할 생각이었다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너는 정말 슬픈 사람이구나 언덕을 함께 오르는 마음으로 그러다 불탄 나무 아래서 깜빡 낮잠을 자고 물웅덩이에 갇힌 사람과 대화도 나누고 시름시름 눈물을 떨구는 가을 새들의 울음소리를 이해하게 되고 ―「역광의 세계」 부분 역광의 세계는 금지된 것들로 가득하다. 흑과 백의 분명한 대비 때문에 버려져야 할 것들이 많다. 시적 화자는 어둠 속에 버려진 것들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누추로 시달린다. 희망의 초월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역광의 세계에 있을 때이다. 그렇기에 “버려진 페이지들을 주워 책을 만들” 수 있다. 버려진 것에 생생한 숨결을
작성일 2023-11-08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316상세보기 -
비평 고광식 - 시와 비평의 관계에 대한 질문-2020년대 시의 좌표계
시와 비평의 관계에 대한 질문 –2020년대 시의 좌표계 고광식 1. 2020년대 시와 비평의 관계 2020년대 한국 시와 비평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하나는 ‘2000년 이후 자폐증적인 표정을 짓는 전위시를 2020년대도 이론적 근거로 확장해 갈 것인가?’라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성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젊은 시인들의 과도한 실험 정신에 본질적 의문의 칼을 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시의 본질적 속성은 새로운 물결을 타는 데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시란 창작이기 때문에 발상 단계부터 전통의 기시감을 뜯어낼 필요가 있다. 전통적 서정시는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 때 그 위에 교훈과 의미를 얻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현대 시는 무교훈적 이미지를 만든다. 현대 시를 교훈과 의미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젊은 시인들은 전통과 단절해야 했다. 이제 시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들여다본다. 시 쓰기는 우리가 모르는 우주의 영역에 발을 딛는 것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전위시를 쓰는 시인들은 선과 색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추상화를 닮으려 노력한다. 이러한 자의식에서 출발한 일군의 젊은 시인들의 시 쓰기는 2010년대를 넘어 2020년대까지 시단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2020년대의 시는 더욱더 실험적이다. 시인들은 전통적 서정시의 문법보다는 새로운 서정시의 문법을 만들어내는 데 여념이 없다. 시는 2010년대보다 더 길어지고 실험의 영역은 넓어졌다. 심지어 전통적 서정시가 강세였던 신춘문예에서도 2020년부터 새로운 문법으로 창작된 시들이 자주 당선된다. 시의 경향이 분화되고 파편화되는데 비평은 본질적 분석을 하지 않는 추세이다. 당혹스러운 작품에 대해선 이론의 틀에 맞추어 재단한다. 시는 창조적 예술 작품이다. 진리와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시는 인문학의 맨 앞에 서서 독자와 교류한다. 시인은 매혹적인 감각을 재현함으로써 한층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위적인 시로 인해 시와 독자와의 교류가 끊긴 지 오래다. 2000년 이후 미래파라 불리는 시가 그렇다. 이런 전위성은 더욱더 진화를 거듭해가고 있다. 비평가들은 한국 시단에 쌓아지는 작품들을 독해하기에 바쁘다. 지금 여기의 비평가들은 “일급의 비평은 다루고 있는 작품만큼이나 영감에 따라 창조된 독특한 개성의 소산일 수 있다.”1)는 사실을 망각한 채 전위시에 대해 이론으로 대응한다. 비평은 해당 작품에 대한 해석에 머물러선 안 된다. 비평가는 심미안을 가지고 견자의 눈으로 비평 자체가 개성적인 창작이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하게 작품을 해석하고 미학적 판단에만 머문다면 비평은 쇠퇴할 것이다. 시인은 시적 토피아 위에서 새로운 현상을 찾는 존재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절대적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기시감 넘치는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결국 이것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lsqu
작성일 2023-11-08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40상세보기 -
비평 선주원 - 이름의 혼재에 의한 정체성 혼란과 상실된 과거 애도하기
이름의 혼재에 의한 정체성 혼란과 상실된 과거 애도하기 선주원 1) 이름의 혼재에 의한 정체성의 혼란 정체성은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를 토대로 형성된다. 정체성은 항상 자신이 아닌 것, 즉 다란 사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 안에서, 차이를 통해서만 상상되고 구성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윤성희의 『상냥한 사람』에 표상된 작중인물 형민의 정체성은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형민은 삼십팔 년 전에 아역 배우로서 ‘형구네 고물상’이라는 드라마에서 진구 역을 소화했었는데, 그는 실로 오랜만에 「그 시절, 그 사람들」이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어린 날을 회상하면서 당시의 심정을 대담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한 이 소설은 박형민이 ‘형구네 고물상’에 진구로 출연했을 당시에 함께 출연했던 여러 인물들을 화면으로 만나면서 진구로 살았던 당시를 회상하는 이야기와 형민으로 살아왔던 과거의 이야기 등을 현재의 시점에서 평가하는 서술 방식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형민은 자신의 원래의 이름이 아닌 드라마 속에서의 이름으로 불리며 살았던 시절에 대한 반추를 통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음을 드러낸다. 형민이 진구로 불리게 된 데서 경험하는 정체성의 혼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진구로 살던 일년 팔개월 동안 사람들은 그를 기특한 아이라고 불렀다. (중략) 착한 아이도 아니고, 훌륭한 아이도 아니고, 기특한 아이라니. 기특, 이라고 발음해보면 독특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윤성희, 2019:8) 진구로 살던 일 년 팔 개월 동안 형민은 진구로 불리면서 기특한 아이라는 칭찬을 받고 살았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도 가족들을 돌보는 기특한 아이로 이미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미지화됨으로써 형민은 원래의 자신이 가졌던 정체성을 상실하면서, 자신이 진구인지 형민인지 헷갈리며 살아야 했다. 그러한 헷갈림을 극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시간의 경과 속에 형민은 동일성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자기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 출연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할 말이 많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진구는 사진 속에 갇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사실만이 떠올랐다. 그 자라지 않는 아이를 끌어안고 십대 시절을 통과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그는 사회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형민아, 그 시절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말자. 그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윤성희, 2019:9) 형민이 아닌 진구로 불림으로써 동일성으로서의 정체성[자체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형민은 자신이 진구로 사진 속에 갇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가 되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자라지 않는 진구를 끌어안고 십 대 시절을 통과하기 위해 형민은 많은 애를 써
작성일 2023-09-15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80상세보기 -
비평 선주원 - 기억하기를 통한 애도와 지극한 사랑의 실천
기억하기를 통한 애도와 지극한 사랑의 실천 선주원 1) 기억하기를 통한 슬픔과 애도 우리의 삶에서 슬픔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주고받을 수 없는 것이다.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듣는 사람 모두 슬픔이라는 고통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드러내서도 안 되는 문화 속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슬픔에 젖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일부러 괜찮은 척, 센 척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슬픔은 우리가 원치 않아도 언제나 우리를 적시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삶의 곳곳에서 배어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서 기원하는 슬픔은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동반하면서, 우리를 홀로 섬에 있게 한다. 홀로 섬에 남겨진 상황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못지않은 또 다른 고통, 즉 외로움에 치 떠는 고통을 동반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서툴고 어색한 채 어떻게 주어진 시간들을 채워야 할지 막막해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과 혼자 있어야 하는 외로움과 소외감에 생겨나는 막막한 시간들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누군가의 부재와 홀로 남겨진 데서 오는 슬픔의 고통은 어떻게 해소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슬픔을 이야기하고 슬픔의 실체를 깨달아 애도하는 것이다. 그러한 애도를 통해 슬픔의 과거를 기억하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말을 걸면서 그저 순정하게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와 홀로 남겨짐에서 생겨나는 슬픔의 고통을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홀로 미쳐가거나 자폐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우리의 애도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저 슬픔에 젖거나 세상과의 단절을 도모하면서 과거의 시간에 대한 집착을 드러낼 뿐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망각이 작용하지 못한 채 과도한 기억을 낳는다. 과도한 기억은 혼자만의 섬에서 세상과의 단절을 부추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와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 슬픔의 고통을 함께해줄 사람이 없을 때,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과거의 시간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는 양상은 최진영의 『구의 증명』에서 여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사랑하던 연인 ‘구’가 죽은 뒤 홀로 남겨진 ‘담’이 겪게 되는 상실의 고통과 과거에 대한 기억의 과잉, 그리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애도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이 소설은 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물건으로 값이 매겨지는 삶을 살아갔던 ‘구’의 고통, ‘구’의 죽음 뒤에 작용하는 ‘담’의 기억을 통해 세상에 존재했었던 ‘구’를 증명하는 문제를 표상하고 있다. 아울러 너무나도 사랑한 존재였던 ‘구’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구’를 먹는 ‘담’의 식인 행위를 통해 결코 잊혀서는 안 되는 그들의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은 남자 인물 &l
작성일 2023-09-15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88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