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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문학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아동청소년문학 한상순 - 「승강기 옆 나무의자」외 6편
승강기 옆 나무의자 한상순 전철 승강기 옆 쪼루루 나무 의자 네 개 저렇게 얌전한 척 앉아 있지만 난, 다 봤지. 사람들이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불끈 네 다리에 힘을 주는 걸 승강기 문이 열릴 때마다 함께 타려고 엉덩일 들썩이는 걸 한밤중엔 둘씩 짝지어 승강길 타고 오르락내리락 장난치고 놀지도 몰라 저 봐, 얼마나 놀았는지 엉덩이가 밴질밴질 윤이 나잖아. 상상이라는 아이 딱, 몇 초 만에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어. 구름 위를 날기도 하고 바다 위를 저벅저벅 걸을 수도 있지. 물론 110층 빌딩 벽을 맨손으로 오를 수도 있어. 물구나무로 뚜벅뚜벅 걸어서 학교에 가기도 해. 늦잠을 잔 날은 휘리릭, 해리포터 빗자루를 타고 날면 되지. 숙제 안 한 날은 비둘기로 잠깐 변신, 숙제 검사가 끝날 때까지 창가에 앉아 꾸룩꾸룩 노래하면 돼. 이 아인 꼬리가 길 때도 있고 짧을 때도 있어. 도마뱀 꼬리처럼 뚝뚝 끊어지기도 하지. 하지만 금세 새 꼬리가 생겨나니 걱정 없어. 쉿! 비밀인데 나는 이 아이의 주인이야. 눈물 저금통 새해엔 저금통 하나 마련해야겠어. 눈물을 모으는 저금통. 어쩌다 울게 되면 주먹으로 씩씩 닦지 말고 저금통에 방울방울 모아야겠어. 방울방울 눈물방울 저금통에 담기면 할머니 눈에 인공눈물 대신 눈물방울 톰방톰방 넣어드려야겠어. 자꾸자꾸 태어나 자꾸자꾸 태어나 비 오는 날, 올챙이들이 차 앞유리창 연못에서 꼬물꼬물 자꾸자꾸 태어나 악어 입보다 큰 와이퍼가 입 쩍, 벌리고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자꾸자꾸 태어나 꼬물꼬물 자꾸자꾸 태어나 쓰읍-싹 쓰읍- 싹 와이퍼 괴물이 한입에 꿀떡꿀떡 삼켜버려도 자꾸자꾸 태어나 꼬물꼬물 자꾸자꾸 태어나 석수장이 석수장이 할아버지 망치 한 개, 정 하나로 툭,툭,툭,툭, 돌 껍질 벗기고 강아지를 꺼낸다. 양을 꺼낸다. 낙타를 꺼낸다. 어떤 때는 돌 속에서 부처님도 모시고 나온다. 이럴 땐 석수장이 얼굴도 마냥 부처님 얼굴이다. 공갈빵 소보루빵슈크림빵단팥빵단호박빵소세지빵소금빵 호밀빵소라빵바게트빵흑임자빵밤빵고구마빵완두앙금빵 빵빵빵들이 빵빵하게 이름을 걸고 빵빵하게 앉아 있다. 그 옆에 속없는 공갈빵 엉덩이에 바짝 힘을 주고 더 빵빵하게 버팅기고 있다. 누가 미루나무에게 노랠 시켰나 강가에 서 있는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파르르파르르 떤다 교단 위에 서서 노래 시험 보는 나처럼 파르르파르르 자꾸 떤다 저러다가 노랠 부르면 들으나 마나 나처럼 목소리도 파르르르 떨려 나올 텐데 도대체 누가 미루나무에게 노랠 시켰나
작성일 2024-11-05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16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오지연-「고사리 화석」외 6편
고사리 화석 오지연 나 시조새처럼 날지 못해도 나 공룡처럼 크지 못해도 나 매머드처럼 힘세지 못해도 나 흔하고 보잘것없어도 그래도 나, 수억 년 전에 살았었노라고 절대 잊지 말아 달라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도장 하나 바위 위에 온몸으로 쿵, 찍어 놓았다. 넘어진 날 오늘은 기분이 영··· 안 좋아서 길을 가다 애꿎은 보도블록과 싸웠다. 내가 먼저 머리를 훅 박았더니 대뜸 왕혹이 날아왔다. 까치가 부러워 우리 집 마당에 오래된 감나무 있는 힘껏 까치발 해도 내 맘대로 홍시 하나 따 먹기 어려운데 까치는 어디선가 날아온 까치는 제집처럼 이 가지 저 가지 맘대로 옮겨 다니며 요것조것 입맛대로 골라 먹네요. 쳐다보는 날 보고 “깍깍!” 웃고 가네요. 세상의 저녁 커다란 집 멋진 부엌에도 불이 켜지고 작은 집 허름한 부엌에도 불이 켜진다. 여럿이 혹은 혼자서 갓 지은 또는 식은 이른 때론 늦은 밥을 천천히 먹는다. 울게 하소서 오늘도 난리법석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후 어린 동생은 형이랑 거실에서 〈울면 안 돼〉를 듣고 엄마는 홀로 작은방에서 〈울게 하소서〉를 듣는다. * 〈울게 하소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아리아. 끝 눈 기억이 하나둘 사라지던 할머니 하늘나라로 가시던 날 첫눈이 왔다. 내리는 눈을 보면 “곱다, 참 곱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할머니 할머니에게 오늘 내린 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끝 눈이었을 거야. 추운 겨울날들을 위해 프레드릭, 너는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았지. 그리고 시를 지어 친구들과 나누었지. 나도 한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 먼저 포근한 이불을 챙길 거야. 겨울밤 내내 들을 음악을 모을 거야. 재미있는 책도 잔뜩 모으고, 귤이랑 과자, 향기로운 차도 모을 거야. 손난로와 무릎담요도 준비할 거고, 서투른 시도 가끔은 써 볼 거야. 겨울 내내 안에서 뒹굴뒹굴 대면 아마… 뱃살도 잔뜩 모아질지 몰라. * 프레드릭: 레오 리오니가 쓴 그림책 제목. 주인공 들쥐의 이름.
작성일 2024-11-01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22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김아영 - P. 아크네스
P. 아크네스 김아영 아크네스, 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겨울 방학이었다. 만날 학원과 집만 오가던 나에게 너는 그저 내 일상에 스쳐 지나가는 물웅덩이 위에 잔잔한 파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너의 존재가 내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을 울트라 메가급 핵폭풍으로 변할 줄은 그땐 미처 상상도 못 했다. 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나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곧 깨달았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번 겨울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고등학교 첫 시험의 결과가 달라진다며 수학학원 선생님은 우리를 몰아세웠다. 지금까지는 설렁설렁 공부했다 쳐도 고등학교 2년 동안 빠르게 모든 과정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지금 선행이 필수라는 흔한 말도 잊지 않았다. 히터가 내뿜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좁은 강의실에서 선생님과 서른 명 남짓한 아이들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마시며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했더니 피타고라스 정리나 미분 같은 단어들이 점점 귓가에서 아득하게 멀어져갔다. “야, 눈 감지 마!” 옆에 앉은 한 녀석이 내 옆구리를 툭 쳤다. 나는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놀란 눈으로 눈만 끔뻑거리자 수학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눈 감아보니 어때? 깜깜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지? 그게 너의 미래가 된다. 오늘 힘들다고 눈을 감으면 여러분의 내일은 더 힘들어져요.” 선생님의 말에 강의실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졸고 있던 녀석들마저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웃고 있었다. 그러다 복도 쪽 구석에 앉은 한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 시선에 당황해하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찰랑찰랑한 단발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목까지 빨갛게 물든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내 뺨을 쓰다듬었다. 모공조차 보이지 않는 탄탄하고 매끈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피부 하나는 타고났다며 부러워하던 친구들의 말이 떠올라 나는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때까지도 난 내 일상이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크네스, 네가 내 삶의 어떤 의미가 될 것이라곤 그땐 상상조차 못 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습관처럼 양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다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마 한가운데에 커다란 여드름이 빨갛게 볼록 솟아있었다. 얼마나 속이 곯았던지 손만 대도 아팠다. 거뭇거뭇 수염이 난 코밑에도 작고 하얀 피지들이 몇 개 올라와 있었다. 그것들은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아 손톱 끝에 힘을 주어 짜버렸다. 이마에 여드름이 나는 건 누군가가 나를 짝사랑한다는 뜻이라던데. 문득 어제 학원에서 나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던 그녀를 떠올렸다. 혹시 그녀가 나를&mid
작성일 2024-11-01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71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김아영 - 언더워터 카우보이
언더워터 카우보이 김아영 지난 7월 9일, 제주시 애월 앞바다에서 괴생명체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스쿠버 다이빙 중 괴생명체를 목격했다고 주장한 박 모(15세) 군은 ‘괴생명체의 얼굴은 사람과 같았고, 다리는 물고기 꼬리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고 말했다. “기사 좀 봐라. 괴생명체가 아니라 인어였다니까! 내가 분명히 봤어!” 병수가 자신의 휴대폰에 실린 기사를 내 턱밑에 들이밀었다. 심장이 박자를 잃은 채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기사와 함께 올라온 사진 속에는 흐릿하게 푸른색 지느러미가 보였다. 내 옆자리에 앉은 윤찬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또 그 얘기야. 그래서 인어 공주님은 예뻤냐? 왜 인어 공주님 옆에 수다스러운 바닷가재는 없었고?” 며칠 전 병수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가 바닷속에서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를 봤다고 했다. 꿈이라도 꿨냐고, 같이 바다에 들어간 다른 사람들은 왜 못 봤냐며, 평소 병수를 잘 아는 윤찬은 그저 웃어넘겼다. “아, 진짜라니까. 내 두 눈으로 직접 봤다고!” 병수의 말에 윤찬이 듣기 싫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박병수,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 쉬는 시간은 다 끝났어!” 하여간 저 두 사람은 인어 공주와 바다 마녀처럼 누구 하나가 물거품이 되어야지 이 악연이 끝나지 싶다. ‘그날 병수가 본 게 정말 인어였을까?’ 갑자기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기침을 할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주변 아이들이 힐끗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차가운 수돗물을 얼굴에 마구 끼얹었다. 화장실 거울 속에 발갛게 달아오른 내 얼굴이 비쳤다. 가쁜 호흡도 서서히 제 박자를 찾아갔다. 복도 끝에서 조회를 하러 오는 담임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교실로 뛰어들었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찌잉 울렸다. 병수가 보낸 문자였다. - 이번 주말 다이빙 한 깡 어때? * 내가 다이빙을 배우게 된 것은 병수 때문이었다. 병수는 가벼운 입만큼이나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 학교로 처음 왔던 날, 담임이 조회 시간에 말했다. “해구는 건강상의 이유로 한동안 학교를 쉬었다고 한다. 제주도에도 처음 왔다니,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모두 도와주도록.” 어색한 인사를 한 뒤 아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피해 맨 뒷자리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담임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복도 쪽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병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격하게 손을 흔들어댔다. 내가 알던 사람인가, 아님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
작성일 2024-11-01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96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김영경 - 「돌고래와 아이돌」외 6편
돌고래와 아이돌 김영경 돌복숭아 돌아이 똘배 돌이 붙는 건 좀 별나거나 흔하다는 것 제주 바다에 흔하게 많았다는 돌고래 해녀들 물질할 때 배알로 가며 장난도 친다는 돌고래도 별나고 흔해서 바다에만 나가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돌고래가 바글거리는 푸른 바다 멋지지 않아? 신나지 않아? 고래도 아이도 멋지게 뛰어올라 돌아이는 아이돌이 되는 순간까지 돌고래가 고래돌이 되는 그날까지 고래야, 얘들아, 점프! 웃음바다 톳톳톳 토돗토돗토돗 터지는 건 바다의 웃음소리 바다가 키운 웃음소리 건져다가 톳짜장면 톳짬뽕 톳칼국수 먹으면 사람들도 덩달아 톳톳톳 토돗토돗토돗 한바탕 웃음 터트리는 여기는 웃음바다 우도 바당 물 찬 제비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던 제비는 남쪽 끝 초록 섬에 모여 있었다 물 찬 제비가 쏜살같이 바다를 찬다 물에서 제비는 무얼 하려는 것인지 스케이트 타듯 미끄러지며 바다 수면 위를 날아다닌다 파도 따위는 무섭지 않아 폭풍우에 서핑하는 청춘처럼 제비가 바다를 타고 있다 바람을 가르며 파도를 덮치며 물색 좋은 서빈백사 바다를 차고 다니는 물 찬 제비라는 말에 올라타 본다 빗방울 탭댄스 탁탁 타그닥닥 탁탁 타그닥닥 나무 난간 작은 웅덩이 무대에 올라가 반짝이 조명을 받으며 탁탁 타그닥닥 탁탁 타그닥닥 빗방울이 동그랗게 발을 굴리며 신나게 탭댄스를 추고 있어요 전깃줄에 앉은 산비둘기 두 마리 구국구구구국 구구구구국 고개를 까닥까닥 장단을 맞추네요 번데기 허물벗기 -그만들 좀 벗어내. 번데기 허물벗기니? 신나게 얼음 썰매 타고 들어와 사 형제가 벗어 놓은 옷 무더기 세탁기로 옮기며 엄마가 소리치네요. 그래요. 번데기 허물벗기.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커 가는 건 조그맣던 옷들 한 꺼풀씩 한 꺼풀씩 번데기 허물 벗듯 벗어 던지며 어느새 우린 훌쩍 한 마리 나비로 날아오를 거예요. 잔소리 드라이어 갑자기 쏟아진단 말이지 저기압도 없이 고기압도 없이 우웅 우웅 한꺼번에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바람을 쏟아 내고는 뚝 어느 순간 그쳐 버리지! 엄마 잔소리가 웅― 돌아가면 그럴 땐 빨리 젖은 머리를 갖다 대자 뽀송뽀송 젖은 머리가 기막히게 마른다 밤수지맨드라미 바닷속에 맨드라미가 있어? 그럼, 바닷속 정원에도 맨드라미가 있대 닭벼슬 닮은 맨드라미인가? 빨간 산호초인데 바다에도 맨드라미 군락지가 있대 수지맨드라미와 밤수지맨드라미는 사라질 수도 있대 아직 본 적도 없는데 사라져 버리는 건 아쉬워 초록 섬에 하나뿐인 책방 이름
작성일 2024-11-01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73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유행두 - 「너를 그릴 때」외 6편
너를 그릴 때 유행두 동그라미를 그린다 나를 바라볼 네 눈은 크게 그리고 나한테 좋은 말만 해 줄 입을 그리고 내 손을 잡아 줄 따뜻한 네 손을 그린다 그리고 나한테 더 빨리 달려올 수 있도록 다리는 길게 그린다 내 마음에 하트를 그려 넣긴 했지만 네 마음은 어떻게 그려 줘야 할지 모르겠다. 침의 힘 한국인은 밥심이라던데 틀린 말 같다 무거운 장롱 옮길 때 화분 들 때 재활용 모아 둔 것 들 때 종이 넘길 때도 아빠는 손바닥에 침을 퉤 퉤 뱉는다 손바닥 착착 두드리고 나면 꼼짝 않던 장롱이 들썩! 무거운 화분이 으라차! 한국인은 침의 힘이다 치 멸치보다 세 배 맛있어서 삼치 삼치보다 갈 곳이 많은 갈치 갈치보다 꽁꽁 잘 숨는 꽁치 꽁치보다 도망 잘 가는 가물가물 가물치 가물치보다 참말로 큰 참치 참치보다 잘 날아다니는 날치 날치보다 넙죽 잘 엎드리는 자존심 없는 넙치 넙치보다 쥐가 잘 나는 쥐치 쥐치보다 할 말 없는 멸치 치사하게 제사상에 누울 녀석 하나도 없다는 그 치들 참! 맛있네 치! 기도시간 엄마가 손을 꼭 모으고 있다. 아빠 꼭꼭 돈 많이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내 시험 성적 잘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아빠가 눈을 감고 손을 살며시 모으고 있다.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달라고 살며시 기도하고 있다. 엄마 욕심 좀 줄여 달라고 슬그머니 기도하고 있다 엄마 아빠 사이에 앉아 나는 손을 꼭 모았다가 살며시 풀면서 기도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기도하는 것 다 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기도하다 깜빡 졸면, 그때는 좀 기다려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달 지구 이야기가 다 모여 있는 밤마다 내려다보고 지구 이야기 주워 담는 옛날이야기가 다 모여 있는 달 그래서 지구에는 달에게 보낼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있단다 시인이 있고 소설가가 있고 동화작가가 있지 달에게 물어볼 거야 내가 달 출판사에 보낸 이야기 혹시 못 봤느냐고 구름 택배를 이용했는데 달 출판사 어디쯤에 굴러다니는 내가 보낸 이야기 정말 못 봤느냐고 개명 사유서 얼얼한 세상에서 살기 싫었던 동태 채 자라지 않아 말라 버린 노가리 얼다가 녹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서서히 마른 북어 방망이에 두들겨 맞기 싫었던 황태 추위에 벌벌 떨다가 갑자기 녹아 버려 울다가 검어져 버린 먹태 다시는 낚여 잡히기 싫은 조태 그물에 잡히고 싶지 않은 망태 푸른 물살을 가르며 살고 싶은 명태였어요. 까치집 에어컨 실외기 구석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 지푸라기-참새한테 빼앗아 온 것 깃털-닭이 한눈팔 때 잽싸게 물어 온 것 머리핀-알바하던 이모가 잠시 빼놨던 것 못-까마귀네 집에서 몰래 가져온
작성일 2024-11-01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03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강기원 - 「배추밭의 마트료시카」외 6편
배추밭의 마트료시카 강기원 진초록 안에 초록 초록 안에 연두 연두 안에 노랑 큰 잎 속에 작은 잎 작은 잎 속에 더 작은 잎 더 작은 잎 속에 더더 작은 잎 겹겹이 포옥 포옥 감싸 안고 오므린 듯 펼쳐서 펼친 듯 오므려서 안반데기 고랭지 매서운 겨울을 파르라니 난다 재우다 엄마는 마음만 먹으면 모두 잠재울 수 있다 (마른) 김을 재우고 (질긴) 고기를 재우고 (고집 센) 북어를 재우고 (생) 배추를 재우고 (쉭쉭) 아빠 화를 재우고 (칭얼칭얼) 아기야 재우고말고 엄마만 있으면 올빼미도 박쥐도 밤잠을 잘 것 같다 은행털이범 은행을 털기로 했다 악동 넷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수군 소곤소곤  ̄마스크는 써야겠지?  ̄낡은 운동화가 좋겠어. 자국이 남지 않게  ̄모자도 써야 해  ̄모두 검정 옷을 입자.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니까  ̄어느 곳부터 털까? 모의를 마친 넷은 오소산 아래 노랑마을*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령 은행나무 마을. 비둘기의 구구단* 비둘기야, 비둘기야 구구는 팔십일이란다 9단이 어렵기야 하지 그래도 그렇지 구구단 시작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외우지를 못해 구구 구구··· 그러다 언제 3학년 될래? *심언주의 시 「주의 사항」을 읽고 씀. 피곤한 장갑 내 엄지장갑은 끼나 벗으나 말이 없는데 벗어 놓은 아빠 가죽장갑은 뭔가 말을 하는 것 같다 움켜쥐려다 놓친 게 있는 듯 뭔가 허전한 듯 다섯 손가락 편히 펴지 못한 채 아빠의 손금이 새겨진 낡고 검은 가죽장갑 아빠만큼 피곤해 보인다 어스름 뉘엿뉘엿 개가 담장을 넘으면 늑대가 되는 시간 고양이가 공중돌기를 하면 호랑이가 되는 시간 지렁이가 똬리 틀고 뱀이 되는 시간 관 속의 드라큘라가 슬슬 기지개 켜는 시간 놀이터의 함성이 사라지고 나만 남는 시간 오래된 달걀 냉장고 속 달걀이 달걀귀신이 되었어 그것도 모르고 보글보글 라면 속에 퐁당 넣어 호로록호로록 먹었지 먹고 나니 내가 이상해졌어 숨어 있는 귀신들이 다 보여 두루마리 화장지 속 미라 트렁크 속 드라큘라 보름달 뜬 밤 멍멍 대신 하울링 하는 늑대인간 야옹거리는 구미호 옷장 속 벽장 귀신 목욕하려 물을 받으니 물귀신이 먼저 들어와 있는 거야 혹시? 하며 거울을 보니 아, 어쩜 좋아 좀비가 된 내가 나를 보고 있어 오래된 달걀 하나 먹었을 뿐인데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64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정정안 - 「발자국」외 6편
발자국 정정안 눈 내리는 새벽 너는 꿈속에서 하얀 거리를 걸었지 코끝이 빨개진 채로 물었을 거야 저기, 동물들은 어디로 가느냐고 발자국을 따라가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걸어 보렴 아침이 올 때까지 눈을 뜨면 보게 될 거야 지붕 아래 웅크린 등 숨는 아이 창밖을 본다 오늘도 뛰어가는 엄마, 아빠 자전거가 지나가고 자동차도 지나가고 아이들 웃음소리 가까워지면 내 방으로 이불 속으로 왜 자꾸 숨느냐고 물어보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내 안으로 숨는다 다른 상상 괴물들의 배를 갈랐더니 하얀 솜이 나왔어 왜 이렇게 연약한 거야? 터진 곳을 꿰매 주며 물었지 “우리는 괴물이고 너는 용사니까” 군데군데 튀어나온 실밥들 다른 애들하고도 매일 싸우나 본데 흠, 내일은 파티를 열어야겠다 나의 연약한 괴물들도 초대해야지 스웨터 인형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엄마의 지난겨울이 들어 있다 아끼던 스웨터로 떠 준 작은 인형 강아지 짖는 소리에 놀라서, 한 번 버스에서 못 내릴까 봐, 두 번 숙제 발표할 때, 여러 번 꼭 잡는다 엄마 같다 그래, 가져가 아기 때부터 썼다는 내 전용 물컵 “너무 오래 쓰면 귀신 붙는다” 엄마는 자꾸 버리라고 해 물컵에 붙는 귀신이라니 아마도 자꾸 떨어뜨리는 귀신이겠지? 자주 깨뜨려서 혼나는 귀신일 거야 떨어트려도 데굴데굴 구르는 다시 주우면 되는 물컵 붙어 있지 말고 그래, 가져가 여러 명 사탕을 주는 건 7번 엄마다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6번 엄마 2, 3, 4번 엄마는 표정이 비슷하고 5번 엄마는 지쳐 있는데 1번 엄마는 안 나오면 좋겠다 1번부터 5번 나는 혼자 책을 읽고 숙제를 하고 사탕도 아껴 먹는데 “오늘 얘가 왜 이래?” 엄마가 묻는 날은 6번 내가 나온 날이다 진짜 방법 캐러멜 먹을래? 나도 그 아이돌 좋아해 끝나고 햄버거 먹자 친해지는 방법을 써먹는다 캐러멜을 주고받고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고 햄버거를 먹는 우리 가끔은 옆자리에 앉은 채로 멍해진다 우리, 같은 방법을, 쓰고 있나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94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김유 - 1학년 1반 나꽃님
1학년 1반 나꽃님 김유 내 이름은 나꽃님이에요. 나는 키가 작아요. 머리카락도 짧아요. 얼굴에는 주근깨가 있어요. 아이들은 나를 꼬맹이라고 불러요. 나는 꼬맹이가 싫어요. 꼭 돌멩이라도 부르는 것 같거든요. 운동장 그네에 앉아서 애꿎은 돌멩이만 툭툭 찼어요. “쟤 꼬맹이 아니야?” 뒤돌아보니 민지와 아이들이었어요. “꼬맹이 아니야!”라고 마음으로만 외쳤어요. 말해 봤자 아이들이 듣지도 않을 테니까요. “꼬맹이가 어디 갔나 했지. 너무 작아서 안 보이는 줄 알았어.” 민지가 장난스럽게 말했어요.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어요. “꼬맹아, 언니가 술래시켜 줄게.” 민지는 자기를 언니라고 말하는 걸 좋아했어요. 나를 완전히 동생처럼 대하는 거예요. “응.” 그래도 나는 대답했어요. 같이 놀고 싶으니까요. 민지는 1학년에서 가장 키가 컸어요. 나보다 두 뼘쯤 더 컸어요. 주근깨는커녕 점도 없었어요. 머리카락도 허리까지 길었어요. 민지 곁에는 늘 친구가 많았어요. 아이들은 민지랑 놀고 싶어 했어요.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 했어요. 나는 그런 민지가 부러웠어요. 술래만 하니까 재미없었어요. “나 그만할래.” 나는 운동장에 쭈그려 앉았어요. 아이들은 깔깔깔 신났어요. 나는 작아서 정말 보이지도 않나 봐요. 내가 있거나 말거나 재미있어 보여요. 주머니에 있던 미미를 꺼냈어요. 미미는 내 작은 친구예요. 작지만 내 이야기를 다 들어 줘요. 놀리지도 않아요. 언제나 나를 보며 싱긋 웃어요. “미미야, 괜찮아. 너한테는 내가 있고 나한테는 네가 있잖아.” 그때 시현이가 숨으러 가다 나를 봤어요. “인형이랑 말하는 거야?” 시현이는 목소리가 무지 커요. “얘 이름은 미미야.” “1학년이 무슨 인형이랑 노냐?” 시현이 말에 숨바꼭질하던 아이들이 돌아봤어요. “꼬맹이라서 유치하다니까.” 주희가 깔깔 소리 내어 웃었어요. 아이들도 따라 웃었어요. 집에 오자마자 우유를 벌컥벌컥 마셨어요. 컵에 따르지도 않았어요. 입에서 줄줄 흐르고 옷에도 묻었어요. 엄마한테 혼날 거예요. “꺼억.” 속은 뻥 뚫린 것 같았어요. 땅딸막한 내 키가 문제예요. 우유를 아무리 마셔도 소용없어요. 가래떡처럼 키가 쭈욱 늘어나지 않잖아요. “엄마, 엄마!” 헐레벌떡 엄마를 불렀어요. 내가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컴퓨터로 일하던 엄마가 놀랐어요. “왜 그래?” “나도 키 크고 싶어요.” 엄마가 눈을 끔벅끔벅했어요. 그러다 내 두 손을 잡고 물었어요. “무슨 일 있었어?” “꼬맹이 싫어요.” &ldq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5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김유 - 해피버스
해피버스 김유 송이의 생일은 12월 31일이에요. 송이는 1월 1일부터 생일을 기다려요. 솔직히 말하면 ‘해피버스’ 초대장을 기다려요. 날마다 해피버스는 생일을 맞은 어린이 한 명을 초대해요. 생일날 아침 머리맡에 초대장이 놓이는 거죠! 해피버스를 타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놀이공원에 간대요.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요리를 먹을 수 있대요. 어린이라면 누구든 해피버스를 탈 날을 손꼽아 기다려요. 하지만 어린이라고 누구든 초대받는 건 아니래요.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어린이가 초대장을 받을지, 어른들 말씀이면 뭐든 거꾸로 하는 어린이가 초대장을 받을지, 받아쓰기 시험 때마다 백점을 맞는 어린이가 초대장을 받을지, 365일 하루도 일기를 쓰지 않는 어린이가 초대장을 받을지는 아무도 몰라요. 송이는 초대장을 받은 아이들을 책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은 해피버스가 가는 그곳은 별나라보다 더 빛난다고 했어요. 송이는 책을 읽으며 꼬물꼬물 상상을 펼쳤어요. 해피버스는 마치 우주 어딘가를 가는 버스 같았어요. 아침 일찍 송이는 주방으로 후다닥 갔어요. “엄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글쎄, 독후감 숙제를 미리 해 놓으면 어떨까?” 엄마는 점심때 송이가 먹을 음식을 준비했어요. “그게 아니라 내 생일이 삼 일 남았어요!” 송이가 엄마에게 바짝 다가서며 외쳤어요. “알고 있어.” 엄마가 송이의 머리를 헝클었어요. 그리고 덧붙여 말했죠. “엄마는 일이 많아서 오늘도 늦을 거야.” “네, 엄마. 근데 이번에는 해피버스 초대장을 꼭 받고 싶어요.” “엄마도 바랄게. 이런, 늦었다!” 엄마가 서둘러 주방을 빠져나갔어요. 엄마는 택배 회사에서 물건 배달하는 일을 해요. 요즘처럼 연말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작년 생일에 송이는 혼자 밥을 먹었어요. 물론 머리맡에는 해피버스 초대장도 없었고요. 엄마가 출근하고 송이 혼자 남았어요. 아니, 미루가 있었어요. 미루는 몇 달 전 지하철역 계단에서 데려온 개예요. 송이는 미루를 쓰다듬었어요. “미루, 잘 잤니?” 엎드려 있던 미루가 끄응 소리를 냈어요. 송이가 물었어요. “밤새 아팠던 거야?” 미루가 송이의 손등을 핥았어요. 처음 만났을 때 미루는 오른쪽 앞발이 짧았어요. 어디선가 사고를 당한 것 같았어요. 한 발을 절뚝이며 세 발로 걸었어요. 처음에는 웅크리고만 있었지만, 이제는 거실을 한 바퀴씩 돌 수 있었어요. “미루야, 만약에 해피버스를 타게 된다면, 그러니까 아주 만약에 그런다면, 너랑 함께 갈게.” 해피버스에 초대받은 어린이는 다른 사람 없이 혼자만 가야 했어요. 이건 지나가는 꼬마도 알 만큼 당연한 규칙이에요. 하지만 미루는 개예요. 그러니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52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김하영 - 삼매 할매와 차사들
삼매 할매와 차사들 김하영 차례 프롤로그 잠보 삼매 할매 2. 거북 아재와 만나다 3. 저승차사 대리 4. 색다른 영혼 5. 힘내! 6. 찬희야, 이제 내 차례야 에필로그 - 프롤로그 - 지상에는 삼매 신이 살고 있다. 인간들과 어울려 살면서 영혼이라 부르는 귀신들에게 죽을 만들어준다. 어느 날, 옥황상제가 삼매신을 불러올렸다. “삼매, 특별히 해줄 일이 있네.” “뭔디?” 옥황상제가 천천히 깍지를 꼈다. 옥황상제의 두툼한 송충이 눈썹이 꿈틀댔다. “아이들 영혼 중에 하늘로 안 올라오는 오는 영혼이 있어. 아무래도 자네가 나서서 해결 좀 해줘야겠어.” “그건 저승차사들이 할 일이잖여. 난 아이들 꼬시는 법도 몰러.” “저승차사들이 좀 바빠야 말이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차사들로 보내줄 테니 좀 부탁함세.” 삼매가 자기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허연 머리와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면 다 놀라 도망갈걸?” “알았어. 자네 젊었을 때 모습으로 바꿔주지. 그리고 맛난 것도 준비해 놨어. 그럼 내 부탁 들어줄 거지?” 삼매 할매는 마지막 말에 홀라당 넘어갔다. 이리하여 삼매 할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고양이와 아이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갈 거북이를 차사로 죽집을 시작했다. 죽집 주변의 어린 영혼들을 다 거두면 옥황상제의 명에 의해 죽집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다음 죽집 장소는 옥황상제만 알 뿐,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천년이 지난 어느 날, 삼매의 죽집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옥상엔 풀들이 무성히 자란 빈 가게 앞이었다. 삼매 할매가 황금 보자기를 어깨에 둘러멘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옥황상제, 이번엔 여기여? 음, 나쁘진 않구먼. 주걱아, 어뗘? 맘에 들어?” 삼매 할매 앞치마에 꽂혀 있던 나무 주걱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 인간들 눈에 잘 안 띄는 곳이야. 저번처럼 결계가 열린 사이 인간들이 불쑥불쑥 들어오면 큰일이니까.” “그럼 시작해 볼까?” 할매가 히죽 웃으며 황금 보자기를 풀었다. 기름칠로 윤이 나는 커다란 무쇠 가마솥이 드러났다. 할매는 가마솥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솥을 바닥에 쿵, 내려놓았다. 그러자 허름했던 가게가 순식간에 깔끔한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풀이 무성하고 허름한 빈 가게로 보였다. 1. 잠보 삼매 할매 “준후야, 죽 좀 사 올래?” 현관으로 들어서던 준호가 가방을 멘 채 안방 침대맡으로 달려갔다. 노을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방이 온통 다홍빛이다. “엄마, 어디 아파요?” “체했나 봐.”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에 준후가
작성일 2024-10-22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61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조우연 - 「뱀과 개구리와 딸기와 밥」외 6편
뱀과 개구리와 딸기와 밥 조우연 채식주의자 뱀이 있었대요 개구리는 먹지 않았대요 뱀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어요 보다 못한 개구리가 이거라도 먹어보라며 빨간 딸기를 따다 주었대요 그걸 먹고 기운을 차린 뱀은 개구리가 고마워서 올망졸망한 작은 물풀을 갖다주었고요 아, 나는 풀을 싫어해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뱀의 마음이 상할까 봐 개구리는 그 조그만 물풀을 입에 묻히고 먹는 척을 했다나 봐요 ㅇ이 ㅎ의 모자를 빌려 썼더니 내 얼굴 다 타겠어 오이가 울고 있으니까 오이야, 내가 모자 빌려줄까? 호박이 빌려준 모자를 쓰고 호이는 좋아라 거울을 보는데 오박 꽃가루를 따러 날아온 호랑나비 바람에 호랑나비 모자가 휙 날아가자 모자 찾아 날아가는 오랑나비 눌렸던 더듬이를 세우며 오랑오랑 날아가네 뱀눈이 된 이유 긴긴 겨울잠 자고 일어나 굴 밖에 나갔다 아악- 눈부셔! 출생의 비밀 배꼽에 산소 호흡기 달고 둥둥 떠 있던 엄마 배 속 그 컴컴하고 따뜻한 우주에 살던 작은 외계인 지구에 무사히 착륙했지만 아직 지구의 말도 못 하고 우주복 입고 누워서 잠만 잔다 한 살 내 동생 인공위성 그날 밤 하영이가 날 보며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어 반짝! 바로 그때 드디어 이뤄진 거야 별이 되고픈 내 소원도 자진 외톨이 달맞이꽃이 아는 별의 눈물 연잎이 아는 비의 노래 나비가 아는 산국의 심심함 감잎이 아는 감의 혼잣말 저녁 새가 아는 낙엽의 웃음 서로 다 알고 있는 것을 나만 모를 때 많아요 모른 척할 때 많아요 나도 달린다 수박 얼룩말이 배꼽을 떼고 초원을 달린다는 소식 들었니? 언젠가 나도 이 못만 뿍, 빠지면 다가닥 다가닥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사막의 밤하늘을 멋지게 달려볼 거야 지금은 달랑 말발굽 하나 달고 있는 꽉 닫힌 문이지만
작성일 2024-10-14 작성자 최고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82상세보기